대형 트럭은 거칠고 투박한 '짐차'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보기와 달리 첨단 기술을 집약한 고가의 산업장비다. 특히 육중한 짐을 싣고 달릴 때 필요한 기술은 트럭을 이루는 과학 중 핵심으로 꼽힌다. 여기엔 제한적인 엔진힘을 효과적으로 구동계에 전달하는 변속기가 있다.
볼보는 'I-시프트'란 자동변속기를 지난 2001년부터 트럭에, 2004년부터 버스에 각각 쓰고 있다. 많은 대형 상용차가 자동변속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의외이지만 그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변속기와 함께 운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기술을 스웨덴 고텐버그에 위치한 볼보 데모센터에서 경험했다.
먼저 오른 차는 'FH-500 6×4'로 I-시프트(전진 12단, 후진 4단)와 탠덤 액슬 리프트를 갖춘 3축 트랙터다. 탠덤 액슬 리프트는 3축의 구동력을 끊고 바퀴를 14㎝ 들어올리는 장치다. 주행중에도 작동 가능하다. 센터페시아의 리프트 버튼을 누르자 사이드 미러를 통해 3축이 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경우 회전반경이 1m 줄어들며 연료효율은 4% 늘어난다. 이 상태로 35t까지 견인 가능하다. 구동축을 올릴 수 있는 요인은 3축에 동력을 전달하거나 차단하는 도그 클러치다.
볼보트럭 관계자는 "화물 운송 후에 짐없이 돌아오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적합한 장치"라며 "미끄럽거나 지반이 약한 곳은 2축 구동력을 확보해 탈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동 및 접지력이 달라지는 만큼 진동, 소음에서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묵직한 트레일러를 견인하지만 연이은 곡선구간에서 스티어링 조작은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쉬웠다. 볼보 다이내믹 스티어링(VDS) 덕분이다. VDS는 유압식 조향장치에 맞물린 전기모터가 초당 수 천회의 조정을 통해 조종성을 높인다. 손가락만으로도 스티어링 휠을 쉽게 돌릴 수 있는 반면 울퉁불퉁한 구간에서는 직진성을 유지한다. 단순히 무게감이 적은 조작이 아니라 안정적이다. 또 운전에 필요한 힘을 최소화하면서 노면저항이나 스티어링 휠의 진동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다음 시승차는 최고 750마력을 발휘하는 'FH16 750 8×4'다. 지난해 국내에서 공개한 신형 FH시리즈 중 힘이 가장 좋다. VDS와 오프로드·건설용 I-시프트 소프트웨어 그리고 신형 I-시프트의 상징인 '크롤러 기어'를 장착했다. 3대의 시승차 가운데 60t급 덤프트럭을 실은 가장 긴 트레일러를 선택했다.
출발 후 가장 먼저 간 곳은 12%의 경사로다. 차의 등판성능을 알아보는 곳으로, 특히 육중한 트럭에 있어서 고난의 길로 통한다. 오르막 중간에 정차 후 재출발했다. 경사로밀림방지장치를 적용했으나 위치에너지를 못견디고 뒤로 흘렀다. 잠시 제동력을 확보하는 장치이지만 수십t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브레이크 페달을 다시 밟고 동승한 인스트럭터의 설명에 따라 'E/P' 버튼을 눌러 동력 지향 주행모드를 설정한 후 칼럼식 기어 레버를 움직여 크롤러 기어를 활성화하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볼보에 따르면 크롤러 기어는 I-시프트에 전·후진 각각 두 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FM, FMX, FH, FH16가 얹는 13.0~16.0ℓ 엔진과 조합 가능하며, 직접 구동과 오버 드라이브를 모두 지원한다. 기어비는 크롤러 기어 1개 장착 시 직접 구동 19:1, 오버 드라이브 17:1이다. 두 개를 결합한 경우 32:1까지 커지며, 직접 구동 기어박스의 최저 후진 시 비율은 37:1에 달한다. 새 기어를 탑재한 FH16은 제원 상 총중량 260t까지 끌 수 있다. 세계 최대 여객기 에어버스 A380을 견인할 수 있는 정도다. 볼보트럭은 지난 4월 총 750t에 달하는 여러 대의 트레일러를 100m나 끌고가 성능을 입증한 바 있다.
유턴을 해야 하는 반환점에 다다르자 이번엔 길다란 트레일러가 긴장시켰다. 그러나 사이드 미러로 트레일러를 살피면서 크롤러 기어와 VDS를 활용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오프로드 시승에선 5종의 FMX를 준비했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도 판매중인 FMX-500 8×4는 유로6 엔진을 얹고 최고 500마력, 최대 255㎏·m를 내며 VDS와 프론트 액슬 로드 20t 등을 장착했다. 불규칙한 노면에서 VDS는 포장도로보다 더 유용했다. SUV가 접하기 어려울 정도의 오르막에서도 거침없는 등판능력을 드러내며 남성적인 기질을 보였다.
마지막 시승차는 볼보트럭이 상용차 최초로 선보인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탑재한 FH 6×2 트랙터다. 새 변속기는 유럽, 한국에만 내놓은 것으로, 연료효율 향상과 변속충격 최소화가 핵심이다. 두 개의 기어박스가 번갈아가며 변속해 안정적인 엔진회전수를 유지한다. 실제 운전해보니 변속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회사 관계자는 "사실상 변속충격을 없애 적재물의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일 수 있다"며 "무게 중심이 유동적인 액체를 나를 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볼보트럭은 모험심 강한 이벤트로 종종 소비자를 놀라게 한다. 아이가 FMX를 원격운전하면서 차가 부딪치고 구르는가 하면 햄스터가 VDS를 조작하면서 험로를 주행하는 등의 영상으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 만큼 경쟁차들보다 장점을 많이 갖고 있다는 자랑으로도 보인다.
데모센터에서 경험한 볼보트럭은 승용차와 다른 흥미로운 기술을 대거 적용했다. 새 품목의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운전자 피로도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장시간 주행이 잦은 만큼 운전에 들이는 힘과 스트레스를 줄임으로써 배려하는 셈이다. 결국 볼보트럭이 지향하는 소비자 우선의 동반성장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고텐버그(스웨덴)=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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