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김희경 기자] “어차피 잘될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신원호 PD는 ‘응답하라 1988’의 흥행에 대해 강하게 부정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기대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마이크로 전하는 그의 말에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자신감과 힘이 있었기 때문. 11월5일 서울 여의도 비비고에서 만난 tvN 새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 신원호 PD는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대해 세세하게 답변했다.
정은지, 고아라에 이어 또 다시 검증되지 않은 스타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혜리를 캐스팅했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저희는 연기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저희는 저희가 그려낸 캐릭터에는 꼭 맞는 사람을 캐스팅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 정은지나 고아라도 비슷한 경우였다. 오디션과 미팅을 통해 봤을 때 캐릭터와 너무 꼭 맞는 모습을 스스로가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말투와 행동은 기본적으로 캐릭터 성격과의 간극을 최대한 좁혀 연기하기 자연스럽다.”
“이번에 캐스팅하면서도 혜리의 모습을 이전부터 많이 지켜봐왔다. 연기보단 예능을 많이 보면서 ‘이 친구 하는 짓이 성덕선이다’ 생각하며 저런 생각과 행동을 하겠구나라는 참고서 같은 친구였다. 그런데 중간에 혜리가 갑자기 떠서 사실 포기하자는 마음이었다. 저희는 인지도에 연연해서 캐스팅하는 경우는 아니니까 오히려 저희들의 색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캐스팅이 시작된 뒤 보고는 싶었다. 성덕선의 많은 근거가 된 친구니까 보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이 친구가 가진 매력이 너무 많았다. 인간적으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극 자체가 리얼을 강조하는 만큼 연기도 현실성 있게 드러나야 하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친구는 기존 연기자들이 쌓아왔던 관습적인 부분과 달리 자유로운 부분이 많아서 지금까지 본 친구들과는 많이 달랐다.”
“다른 배우들은 잘 맞지 않았다. 혜리를 예전부터 참고했기 때문에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주관적인 입장에서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보시는 분들이야 나중에 다른 입장이 생길 수도 있지만 스스로도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1988년을 기반으로 하면서 시청자가 중장년층까지 확대됐다. 88년도를 삼게 된 장단점과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는 시점에서 PD로 느끼는 소감은 남다를 것 같다.
“혹자들은 ‘왜 했던 걸 또 하냐’라는 말도 있지만, 또 어떤 분들은 ‘또 보고 싶다’는 의견도 낸다. 이제 이 시리즈는 저희 마음대로 멈출 수 있는 시리즈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망할 때까지 할 거다. 이번에 망하면 그만 찍을 계획이다. 기사에서도 처음에 단독이 나왔을 때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댓글이 베스트 추천수를 기록했다. 저희도 경험 상 알고 있다. 확률적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세 번째까지 잘된 경우는 없다. 저희도 잘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다들 망할 줄 알고 있으니 시청률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단지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독특한 색깔이 짙어진다.
“요즘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면 정말 세련되고 엣지가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 중에 촌스러운 드라마 하나 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굳이 많은 이들이 아닌 적음 사람들에게도 임팩트가 큰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저희가 가족, 친구, 이웃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1994년과 1997년에 이어 1988년이다. 자꾸만 과거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까운 2002년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하기에는 당시에 이미 아파트를 사시는 분들이 많았다. 이미 가족과 이웃에 대한 결핍이 많이 회자되던 시절이다. 그와 달리 1988년도에는 적어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간에 사람들 간의 따뜻한 정이 살아있었다고 생각했다.”
“작가들이 각 년도 별로 정치, 사회, 문화적 일들을 연대기별로 정리한 리서치 파일이 있다. 그걸 보면 8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의 일들이 세세하게 기록됐다. 그중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던 시기도 있었고,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해도 있었다. 그게 각각 1994년, 1997년, 그리고 1988년이다. 특히 88년도에는 압도적으로 큰일들이 있었다. 올림픽을 제외해도 사건 사고나 문화적, 음악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88년도에는 저도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음악을 많이 들었다. 다시 찾아봐도 ‘이렇게 다양한 음악이 사랑받던 시대가 있었구나’ 싶었을 정도로 1위곡들이 트로트, 락, 댄스, 발라드 등 다양하다.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 OST도 그랬지만 가장 크게 그때의 기억을 불러다주고 환기시켜주는 건 음악이다. 다른 공간, 다른 세태에 살았어도 음악은 모두가 들었기 때문에 그 효과가 굉장하다”며 “저희가 음악을 사용하는 입장으로서 이번 ‘응팔’은 행복하다. 젊은 시청자들이 들었을 때도 매력을 잃지 않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1988년에는 문화적 성장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다. 이 부분은 드라마에서 어떻게 다뤄지게 되나.
“실제 있었던 일처럼 보여 지길 원하는 드라마다보니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겪게 되는 전개를 그린다면 다소 진정성이 떨어질 것 같다. 가족의 소재에 역사적 이야기가 들어온다면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았다. 전에 ‘응답하라 1994’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당시 버스를 타던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의 삐삐가 동시에 울리는 장면을 보여주듯 할 거다. 그게 우리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큰일을 뉴스로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사건을 깊고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사건을 파고들기보단 평균적으로 겪어 본 사람들의 경험 정도로만 표현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가족의 정서를 많이 강조한다. 시청자들에게 하나의 재미로 여겨진 ‘남편 찾기’는 이제 끝나는 건가.
“‘응팔’ 제작 확정 당시 많은 분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항상 물어보시던 것이 바로 남편 찾기의 유무였다. 그럴 때마다 늘 제가 애매하게 ‘로맨스가 없을 순 없다’고 돌려 말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남편 찾기는 당연히 한다. 또한 지나간 시절이라는 코드와 첫사랑이라는 코드는 절대 뗄 수 없는 코드다. 제가 좋아하는 코드인 만큼 반드시 들어가지만, 빼놓지 않고 했던 말이 가족 코드도 들어간다는 것이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점이 없다면 지쳐서 보지 못할 것이다. 20회를 엮어서 갈 기름이 필요하다. 어쨌든 ‘응팔’의 결말도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거다. 그 엔딩점을 향해 전체 구성을 잡아야 하니 저희에게 로맨스는 공학적 필요가 있는 셈이다.”
“저희가 가족의 이야기를 많이 강조하는 것은 ‘남편 찾기’ 같은 로맨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은 거다. 대놓고 코믹 가족극이라 한 건 그쪽으로 무게를 쏟아야 추가 쏠리지 않을 것 같았다.”
굳이 ‘응팔’의 배경을 도봉구 쌍문동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요즘 많은 기사나 에세이를 보면 사라진 골목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이야기들이 왕왕 있다. 저도 어렸을 때 골목길에서 살았고, 그때 당시 오갔던 이웃들의 정과 서로의 수건이 몇 개인지도 알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감성이 그리워서 시작하게 됐다”며 “요즘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런 따뜻한 정의 사람들이 그리운 분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쌍문동을 잡은 이유는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는 평균적 동네면서도 이름을 들으면 알 것도 같은 동네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보증이 가능하다. 연출가님이나 작가, 또 지인의 지인들이 쌍문동 출신이라 많은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도봉구 쌍문동이라는 정겨운 이름이라 골랐다.”
소품 준비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항상 소품팀과 미술팀에게 미안해 죽을 것 같다. ‘응답하라 1994’ 때도 그랬지만 늘 가슴 속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팀이다. 날밤을 새면서 대본이 나오면 뭘 만들지, 뭘 사오고 구현할지 고민하느라 힘들어한다. 그나마 ‘응사’를 하며 경험아 많이 쌓여 제작에 노하우가 생겼지만 확실히 어려운 부분이다”며 “특히 ‘응답하라’ 시리즈뿐만 아니라 복고의 콘텐츠들로 인해 옛날 아이템들이 돈이 된다. 88년도에 옛날 택시에 달린 작은 부품을 가지고 계신 분이 7만원에 판매한 경우도 있고, 당시 만화책 한 권을 사는데 20만원이 들었다. 물론 그런 것들이 가치가 있으니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만, 제작비가 크고 날이 갈수록 구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특히 88년도 소품을 구현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1988년도를 그려내기 위해선 많은 인터뷰가 필요했을 것 같다.
“‘응답하라 1997’과 달리 작가가 88년도에는 중학교 1학년이었기 때문에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시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부모님이 어떻게 살고 어떤 말을 했는지의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변 지인의 지인까지 끌어와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한 게 어마어마하다”며 “대부분 88년도의 기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세대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각자 가지고 있는 기억이 다 다르다.”
“시대가 오래 됐으니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맞고 누구는 아닌 기억의 차이가 워낙 크니까 어떻게 해야될 지 막막했다. 결국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 맞춰줄 순 없겠다 싶었다. 매 순간이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시간이 지상파 주말드라마와 시간이 다소 겹친다. 의도한 부분인가.
“사실 어느 시간대에 드라마가 편성되는지 몰라 편성쪽 직원들이 원하는 시간대로 무조건 오케이라고 했다. 주말드라마를 접수하려는 의도처럼 보이겠지만 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시청률이 2, 30%가 넘는 공룡 같은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잘될 거라는 생각은 정말 요만큼도 없다.”
“물론 결정을 내린 이유는 드라마 러닝타임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1, 2회가 거의 80여 분이라 7시50분으로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며 “그 시간 이후 ‘삼시세끼’와 ‘SNL 코리아’ 등 대중성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다른 프로그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싫었다. 적게 영향을 주는 시간대라 저도 허락했다.”
“‘응팔’은 요즘 없는 가족의 훈훈함과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다. 단 한 명이라도 따뜻하고 뭉클하고 괜히 옆에 있는 사람이 좋아지는 효과를 얻었다는 반응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시청지도서가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 부담감이 생기진 않았나.
“지난 주 시청지도서는 기본적으로 드라마가 가지고 가는 생활 정보나 시대적 정보를 미리 노출해서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시청지도서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응답하라 1994’ 1회보다 시청률이 높았다. 그걸 보고 ‘조용히 망하긴 글렀다’ 싶었다. 망해도 크게 망할 것 같다.”
시대가 88년도이니만큼 중장년층 배우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조언을 들을 것 같다.
“작은 말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촬영을 할 때마다 중장년 배우들이 말이 너무 많다. 어떤 소품이나 상황을 연기하려고 하면 각자의 기억대로 이야기한다. 매번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피곤하긴 하지만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연탄집에 살았던 저조차도 연탄은 늘 아버지가 하셨기 때문에 저는 잘 할 줄 모른다. 그 메카니즘을 구현할 때 정확히 보여주긴 어렵다. 그럴 때 그 분들이 정확하게 시범을 보인다. 그분들이 있어 어린 연기자들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스태프를 통틀어 제가 3번째로 나이가 많을 정도로 스태프들의 연령이 어린 편이라 믿을 수 있는 건 연기자들 밖에 없다.”
여주인공 혜리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혜리에게 항상 하는 말은 ‘배우지 말라’는 거다. 드라마를 많이 보면 기존에 있던 전형성이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전형성은 경험할수록 남들이 하는 것처럼 비슷하게 되는 거다. 극중 성덕선은 공부에 관심이 없어 전교 999등을 하고, 그저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이다. 혜리의 다듬지 않은 거친 부분들이 덕선의 면들을 더 리얼하게 살릴 수 있는 매력이다. 웃음 하나를 해도 거친 웃음을 보이고 ‘이렇게 할 수도 있겠다’ 싶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는 친구다. 전형성을 가지고 오는 부분에 있어 어느 정도의 스킬은 요구하는 편이지만 평소 일상적 연기에 대해서는 ‘어디서 본 것 같은 연기가 아닌 네 것을 보여달라’고 주문하는 편이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혜리를 예뻐하는 편이다”며 “혜리는 기본적으로 성격 자체에 친화력이 뛰어나고 분위기도 잘 만든다. 물론 연기자가 그것만 만들면 예쁘지 않다. 본업을 잘 해야 예쁨을 받는 거다. 초반 혜리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지금은 다들 혜리를 칭찬하고 있는 현장이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다.”
한편 ‘응답하라 1988’은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을 배경으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그리며 아날로그식 사랑과 우정, 평범한 소시민들의 가족 이야기로 향수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드라마. 6일 오후 7시50분 첫 방송. (사진제공: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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