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인턴기자] 청명한 하늘을 벗 삼아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하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쌀쌀한 바람과 바싹 말라버린 나뭇잎에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 추(秋)와 잃을 추(墜)가 동음인 건 어쩌면 이런 연결고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푸른 생기는 앗아가 버리지만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내어주는 가을처럼 우리 인생도 상실 후에 더 크게 남겨지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 그것이 후회든 깨달음이든 말이다.
떨어지는 낙엽이 고요한 마음에 파동을 일으켜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면 영화 한 편으로 달래보는 건 어떨까. ‘상실’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아픔을 이겨내는 용기를 가르쳐 주는 영화들을 골라보았다. 이 영화들이 당신의 고독감은 가져가고 잔잔한 감동을 남겨주길 바라며.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2011)
2001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9·11 테러가 일어난 지도 벌써 14년이 지났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이 영화는 그때의 사건 1년 후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속 주인공 오스카도 9·11테러가 일어난 그 날 아빠를 잃었다. 슬픔에 젖은 나날을 보내다 우연히 아빠가 남긴 열쇠 하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열쇠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 시작된다. 영화는 소년이 여행을 통해 아빠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아픔을 치유 받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자신만 홀로 남겨진 것 같고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힘을 내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얻도록 도와주는 무언가는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 안녕, 헤이즐 (The Fault in Our Stars, 2014)
존 그린의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안녕, 헤이즐’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산소통 없이는 버티기 힘든 말기 암 환자 헤이즐과 근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어거스터스가 짧은 시간 동안 용기 내어 사랑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담아냈다.
원작 제목이 된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의 “잘못은 우리 운명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있네”라는 말처럼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자신들의 운명을 탓하기보단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잘 살아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로맨스가 주 내용을 이루는 멜로지만 유쾌한 일상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부드럽게 넘나들어 휴먼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죽음이란 늘 가깝고도 멀리 있는 존재임을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종종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현재를 즐기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 동경가족 (Tokyo Family, 2013)
민족대명절인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명절이라고 해도 요즘 시대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다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집이 몇이나 될까. 이런 서글픈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가 바로 여기 있다.
영화 ‘동경가족’은 일본영화 3대 거장 중 한 명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1953)’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 동일본대지진 이후로 시대적 배경은 바뀌었지만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작은 섬에 사는 노부부가 도쿄에 자리 잡은 자식들을 보고자 올라오지만 부모의 방문을 부담스러워하는 자식들. 그로 인해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어 한 노부부의 소박한 꿈이 무너지는 모습을 일본영화 특유의 감성으로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족의 의미와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 지에 대해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작품이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극적인 요소도 감정이 요동치는 일도 없는 잔잔한 스토리지만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그 이유는 영화 포스터에는 적힌 문구로 대신한다.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사진출처: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안녕,헤이즐’, ‘동경가족’ 포스터 및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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