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최송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을 가장 사랑한다는 배우 하지원은 “다음을 위해 고민하며 망설이기”보다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집중”한다. 모든 현장과 모든 인연, 모든 순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가 지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최근 영화 ‘허삼관’(감독 하정우) 개봉 전 한경닷컴 bnt뉴스와 만난 하지원은 작은 말에도 웃고, 순간을 경청하는 ‘긍정’ 그 자체의 인물이었다.
“‘허삼관’ 같은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억척스러운 연기, 엄마 역할도 처음이다 보니 부담이 컸죠. 고민도 많았는데 많은 분들이 ‘하지원에게서 보지 못했던 면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해주시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좋더라고요. 뭔가 또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감도 붙고요.”
여배우라기 보다는 여전사. “새로운 것” 내지는 “도전과 정복”을 좋아한다는 그는 영화 ‘허삼관’ 출연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해왔다. “옥란이라는 인물이 내 옷이 아닌 것”였다.
천하의 하지원이 망설이는 캐릭터라니. “의외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이런 억센 역할은 해온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남장부터 스턴트우먼까지 소화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강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평소 “욕을 하지 않아서 내추럴한 대사가 붙지 않았던” 그는 “욕을 잘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어색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허옥란은 세 아이를 둔 억척스럽고 뻔뻔한 성격의 인물. 첫째 아들 일락이 허삼관(하정우)의 아들이 아닌 과거 연인 하소용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자 “내 남편이 당신 아들을 키우는데 많은 고생을 했으니 병원비를 내라”고 우길 정도의 뻔뻔함을 가진 캐릭터다.
“소설 속에서는 더 억세고 뻔뻔해요. (웃음) 그래서 더 망설였던 거죠. 그런데 각색되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나, 더 예쁘게 표현된 것들이 있죠. 후반부에 옥란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장면도 등장하고요. 하지만 소설 속 옥란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보고서도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원의 마음을 돌렸던 ‘허삼관’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거절할 마음으로 감독 하정우를 만났지만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했다. 시나리오가 재밌었던 탓이었다.
“감독님이나 PD님이 제게 ‘옥란 역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하시는 거예요. 궁금했죠. 호기심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봤을 때 옥란이는 저랑 안 맞는 느낌인데 어떤 부분에서 잘 어울린다는 걸까. 고민 끝에 ‘엄마 역할은 처음이라서요’라고 했더니 하정우 씨가 그러더라고요. ‘나도 아빠 역할은 처음이야.’”
포기를 모르는 남자 하정우는 “하지원이 연기하는 옥란”이고 “하지원이 표현하는 아기 엄마”라며 끊임없이 그를 회유했다. “하지원이 표현하는 옥란”이라는 말에 조금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잔상처럼 머릿속을 맴도는 시나리오에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회사에서 정우 씨한테 전화를 했죠. ‘지원이가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웃음) 그렇게 해서 출연하게 된 거예요.”
각색된 시나리오는 “동화적이고 판타지적인 매력”으로 “리얼리티를 대놓고 보여주기 보다는 세련된 감각으로 감정을 터치”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부분들이 상상한 부분들과 결합한다면 어떨까. 하지원은 생각했다.
“옥란이가 하소용 만나는 신을 많이 기대했어요. 그 신은 전 연인에게 ‘내 남편이 당신 아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말하러 왔어요’라면서 대놓고 우기는 장면이잖아요. 엄마의 심정도 있지만 처녀시절 그 자존심을 지키려는 신이었죠. ‘아직 죽지 않았어’라는 마음으로 가서 그 댁 와이프와 싸우는 장면들. 그런 게 궁금했었죠. 옥란이 어떻게 꾸미고 갈지도요.”
하지원이 언급한 장면은 엄마 옥란과 여자 옥란의 사이쯤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자 옥란에 감정이입이 되더라”며 “연기에 있어서도 엄마 옥란과 여자 옥란의 갈등이 느껴졌다”고 감상평을 늘어놓자 하지원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돈을 달라고 말하지만 구걸하는 게 아닌 자존심을 지키는 태도를 취하려고 했어요. 엄마니까 처녀 때처럼 마냥 새침하지는 않고, 전 연인 앞이니까 마냥 억척스럽지도 않게요. 그 장면은 전날부터 리허설도 많이 할 만큼 중요한 신이었어요. 하소용 오빠랑 워킹이나 동선도 맞춰보고요.”
그는 결혼 전 옥란에 대해 “한줄기 빛 같은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다”며 부러 밝고 톡톡 튀는 톤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결혼하고 나서는 외적인 모습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최대한 내추럴하게 보이려고요. 카키색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있지만 사실 그 옷 피팅 굉장히 많이 한 거예요. (웃음) 어떤 카키가 더 잘어울리는지, 어떤 핏이 자연스러운지 따졌어요. 몸매가 드러나지 않게 노력했죠.”
화려한 보석이나 의복 없이도 빛나는 옥란. 그런 점에서 옥란은 배우 하지원과 상응하는 구석이 있다. 그는 기교 없이 정직한 어투로 옥란에 스며들었고 상황을 즐기려고 했다.
“아이들과 있을 때, 누나처럼 보이면 안 되잖아요. 엄마처럼 보이도록 노력했죠. 그런 마음은 그냥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아이들과 함께 놀고, 그 아이들을 예뻐하니까 그게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났어요. 일종의 방법이죠. 작품에 따라 수십 번, 따지고 계산해야하기도 하지만 ‘허삼관’은 계산한다고 잘할 것 같지 않았어요. 릴렉스가 우선이었고 아이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어요.”
하지원은 ‘허삼관’ 현장에 대해 힐링이라고 설명했다. 섬세한 남자 하정우의 촬영장은 사랑스러운 아역배우들과 상냥한 배우들이 모인 일종의 놀이터였다. 몇 차례고 하정우에 대해 “배려쟁이고 센스쟁이”라고 설명하는 그에게 “어떤 점이 그렇게 섬세했는지” 물었다.
“제가 워낙 운동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숙소에 런닝머신을 준비해 주셨더라고요. 거기에 촬영이 일찍 끝나거나 없는 날은 같이 등산도 해줬어요. 편백 나무 숲에서 삼림욕도 하고 같이 요가도 해줬어요. 저녁엔 건강식, 저염식으로 준비도 해주시고.”
하지원의 말에 “거의 트레이너 아니에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젖히고 소녀처럼 웃기 시작한다.
“전 늘 현장을 재밌어하고 좋아하지만 이번엔 정말 최고였어요. 현장과 현장 밖 다 즐거웠죠. 정말 많은 힐링이 됐어요. 관객 분들도 보고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는 따듯한 영화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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