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희 기자] “모든 사람은 창조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리고 누구든 창조적 표현과 연관된 능력을 갖고 있다”
요지 야마모토와 같이 일본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3인에 속하는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현해낸 전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디자이너이다. 오트 쿠튀르의 중심에서 의복 사이의 공간을 이용해낸 디자인을 선보이는 그는 항상 한 피스의 옷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것을 디자인의 기본적인 철학으로 삼는다.
급진적이지만 실용적이고 기술과 기능성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갖춘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세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 “나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다”
1938년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여자 형제들의 패션 잡지를 접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타마 아트 대학을 졸업하며 파리로 이주하며 기라로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파리 패션 하우스에 첫 발을 디딘다.
그로부터 2년 후 이세이 미야케는 지방시의 어시스트로 자리를 옮겼고 파리로 온 지 4년 만에 뉴욕으로 건너가 제프리 빈의 기성복을 디자인했다.
1970년 4월 도쿄에서 토모코 고무라의 도움으로 텍스타일 디자이너 마키코 미나가와와 함께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한 그는 기모노의 전통으로부터 사각형 의복을 개발한다.
1년 후 뉴욕에서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한 그는 이어 파리로 진출하며 솔기와 여밈이 없는 옷으로 자연 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클래식한 ‘한 장의 천’이라는 테마의 컬렉션으로 파리 패션계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이에 1974년 일본에서는 ‘일본 패션 편집인 클럽상’, ‘마이니치신문 패션상’을, 뉴욕에서는 ‘프레트 패션 디자인학교’에서 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떨쳐 나갔다.
■ “나는 순간적인 디자이너가 아니라 영원한 스타일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다”
‘한 장의 천’에 이어 ‘플리츠’를 발표한 이세이 미야케는 지저분한 주름을 고급스러움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과 동시에 일본 여성들에게 복장의 자유를 선사한 디자이너로 꼽히기도 한다.
1993년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을 론칭하며 독특한 염색방법과 기술로 지퍼와 다트가 없는 디자인, 리버시블 디자인 등으로 풀어내며 실용미를 더한 의상들로 답답한 의상들에 혁신을 꾀한 것.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의 전통 직물 중 하나로 노동자나 무술인들의 옷에 주로 사용하는 ‘사시코’ 원단을 이용해 기모노, 사무라이 등과 같은 전통적 요소를 토대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 “디자인은 상업과 혁신을 연결시킨다”
그의 작업물은 수공예에서 탄생한다. 수공예적 과정을 바탕으로 몸에 활기를 더하는 옷을 디자인하는 것.
조형성을 활동성에 구애 받지 않고 실현시키는 그는 지금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치며 디자이너가아닌 아티스트로 평가 받는다. 그리고 일본의 전통을 세계화 시킨 창조성으로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진출처: 이세이 미야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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