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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히스토리] 오랜 역사속 ‘향수’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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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향기는 화려하지 않다.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대신 오랜 시간 무의식 중에 머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 자체가 바로 ‘이미지’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향에 집중해왔다. 역사상 인간이 처음으로 향기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신전에서였다고 기록돼 있다. 신의 제단을 신성시했던 고대의 사람들은 제사를 올리기 전 몸을 깨끗이 하고 향나무의 즙과 연기로 냄새를 없앴다. ‘Purfume’이라는 단어의 기원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Per-fumus’는 라틴어로 ‘연기를 통해서’라는 의미다.

문명과 기술의 발달은 향기를 신의 전유물에서 인간의 보금자리로 끌어내렸다. 때로는 소독제로, 살균제로, 향료로, 또 언젠가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번영의 실마리는 현대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향수는 지금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 모두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화장품이자 사치품이며, 신과 인간 사이 소통의 매개체였던 향수에는 어떠한 역사가 얽혀있을까.

▶ 향을 찾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무를 태우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향나무를 태우면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이를 흥미롭게 여긴 사제들은 응당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 신에게 그것을 바쳤다. 덕분에 이집트에서 향의 존재는 오랜 기간 신성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향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들 역시 고대 이집트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강한 햇볕에 피부가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의 바디오일과 같은 기름을 몸에 바르곤 했다. 여기에 꽃이나 나무조각을 섞으면 독특한 향내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향유의 시초다. 향유 기술이 발전하며 이집트 여인들은 몸의 각 부분마다 다른 향을 바르기에 이르렀고, 목욕을 할 때 물에 개어 사용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문헌에는 사향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사향은 중국 초기 향료제작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인도인과 이집트인, 그리스인을 거쳐 로마인들에게까지 전승되었다고 한다. 사향은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찾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개 생식기의 악취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 향을 만들다

고대인들은 향을 주로 탈취의 목적으로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 가치가 재조명되었다. 향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다양한 원료를 사용한 보다 좋은 향수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클레오파트라가 ‘커피’라는 향료로 그 아찔한 매력을 드높였다는 것이 알려지며 세간에는 향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나갔다.

이에 단순히 물이나 기름에 향이 녹아 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빠르고 확실하게 향을 채취할 수 있는 방법에 이목이 주목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증류법이었다. 꽃이나 열매 등을 용기에 쪄 수증기를 추출하는 것으로 ‘불가리아 로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최고의 장미유 1파운드를 위해서는 양질의 불가리아산 향료용 장미가 백만 송이 이상 필요한데 그 가격이 약 8,000달러에 달한다. 말 그대로 액체황금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금액이다.

이 외에도 압착법이나 침출법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향이 보다 풍부해진 것은 추출법 덕분이었다. 열에 불안정한 원료는 수증기 증류하게 되면 향이 분해되어 버리는데다 동물성 향료는 증류법으로 채취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유지에 향을 녹여내는 추출법으로는 거의 모든 향을 채취할 수 있었다. 이후 향과 향료를 추출하는 방법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19세기 즈음에서는 인공향료를 포함해 4000여가지 이상의 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 되었다.

▶ 향을 꽃피우다

1세기 네로 황제는 하룻밤의 파티에 장미 기름, 향수, 꽃잎을 약 16만 달러치나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왕비의 장례식에는 아라비아 전역에 장미가 물결쳤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행렬 중의 노새에게조차 향수를 뿌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 같은 향수의 남용은 교회의 비위를 거슬렀고 급기야 타락과 사치의 상징으로 치부되었다. 이는 개인적인 용도로 향수를 사용하는 일이 비난을 받게 되기까지 이어졌다.

향료의 시작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였다면, 그 꽃은 유럽과 프랑스에서 피었다. 1190년 프랑스 국왕 필립 2세가 향수 제조업을 공식적으로 허가한 뒤 파리에는 향수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어 다양한 향수를 선보였다.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악취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있기도 하나, 결국 향수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일부 귀족 계층들뿐이었다.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은 보다 좋은 향을 남들보다 먼저 갖기 위해 조향사를 고용하거나 향수공장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했다.

1차 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거추장스럽지 않은 무릎 밑 길이의 스커트가 유행하게 됐고, 향 역시 거기에 따랐다. 향수가 패션과 밀접하게 유행을 같이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향수가 샤넬 ‘NO.5’, 니나리찌 ‘래르 뒤 땅’ 등이다.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난 뒤에는 여성의 우아함과 여성스러움을 단편적으로 상징하는 ‘미스 디올’이 탄생하기도 했다.

한국에 향수가 보급된 것은 372년에 고구려의 한 승려가 중국에 파견되었다 돌아오면서 향료를 수입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신라시대의 귀부인들이 향낭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향수는 점차 대중화되었다. 그리고 15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지나 2012년 국내의 향수시장은 4,500억원 규모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화장품 시장에서 겨우 5% 정도를 차지하는 비율이지만 그렇기에 업체들 간의 경쟁은 치열하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수입업체와 국내 업체들은 앞다투어 향수 브랜드를 선보이는가 하면 프레스티지 향수 라인을 대거 등장하기도 하고 있다. 그야말로 ‘향기로운 싸움’의 한창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소설 『향수』를 빌어 “냄새를 지배하는 자, 그가 바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현재 향수업계에도, 그리고 향수를 사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도 완벽하게 해당되는 말이다. 고대의 이집트나 향수제조업이 허가되었던 12세기 프랑스와 달리 현대에는 수많은 향이 넘쳐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조건 좋기만 한 향기가 아니라 각자 개인의 개성을 살려줄 수 있는 ‘시그니처’ 향이다.

향기는 더 이상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현대의 향수가 기억해야 할 기본이다. (참고:「향료의 역사」, 최낙인/ 「향수」, 브리태니커/『향수 과학 혹은 예술』, 김상진 외 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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