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긴 의자에 앉아 편한 휴식을 취했다. 고소증세 때문에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앞으로 에베레스트에서는 어떻게 해야할 지 잠시 걱정이 들기도 했다.
얼마 안 있어 호주친구 챨리가 도착했다. 찰리와 일행은 이곳에서 하루를 머무르며 안나푸르나의 일몰과 일출을 모두 구경하고 내려간단다. 나도 그들과 함께 안나푸르나의 멋진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미 정해진 일정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경미하기는 하지만 내게도 고소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해발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챨리와도, 프랑스 아가씨와도 기념촬영을 하고 서로의 건승을 다짐해본다.
한 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베이스캠프에 머물면서 나름대로 안나푸르나의 멋진 모습들을 두루 구경했다. 게스트 하우스를 지나 안나푸르나로 조금 더 가까이 진행하면서 점점 더 삭막해지는 고산의 속살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인근에는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다가 목숨을 잃은 산악인들의 추모비들이 많이 있었다. 산이 좋아 그 산을 오르다가 결국은 이 세상을 떠나 영원히 산을 바라보며 영겁의 세월에 묻힌 그들은 진정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소한 그들이 인생을 살며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것이다. 멀고먼 타국 네팔하고도 이 깊은 산중 안나푸르나까지 와서 등정을 할 정도라면 그는 이미 산에서 단련되고 훈련된 산악인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랬던 그가 일생에 목표로 했던 것 중 하나를 추구하는 도중 사고로 운명하였다면 아름다웠던 인생이 틀림없지 않을까?
1999년 4월29일에는 안나푸르나(8091m)에 자그마한 체격의 한 한국 여성 알피니스트가 올랐다. 그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을 지닌 안나푸르나의 하산길에 추락해 설산에 몸을 묻었다.
그 이름은 지현옥(당시 37세). 그는 1993년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한 이래 1997년 가셔브롬1봉(8068m) 최초 등정, 1998년 세계 최초로 가셔브럼 2봉(8035m) 무산소 단독 등반 등 한국여성 산악계에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나는 산에 가고 싶어 미치겠고, 그 환경을 주변에서 만들지 못하는 나는 괴롭고, 그리고 내가 불쌍해 미치겠다(93년 9월15일)”
지현옥을 추모하는 흉상은 모교인 서원대에 그리고 추모비는 소박한 목재로 만들어져 조령산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의 시신은 아직도 안나푸르나에 묻혀있다.
>>>11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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