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넷째날. 오늘은 드디어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로 가는 날이다. 해발이 일천 미터나 올라가는 트레킹이고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날이다.
마차푸차레로 올라가는 협곡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더구나 날씨가 아주 좋아서 화창했다. 그러나 사실 데우랄리에서 MBC구간은 12월과 1월에는 조용했다가 2월에는 폭설이 자주 내려 트레커의 길을 막기도 하는 구간이다. 데우랄리에서 MBC구간은 약 2시간이 소요된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서 일행 중의 한 분에게 구토증세가 발생했다. 함께 가는 가이드가 고소증세라고 한다. 구토를 하려는 분은 토하려고 했지만 나오는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만 보였다. 가이드는 그만 내려가자고 했지만 그 분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온 안나푸르나인데, 이제 두 시간만 참고 가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인데 여기서 멈출 수 있다는 말인가? 고소증세가 나타나면 해발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증세가 없어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누구도 하산을 권유하지 않았다. 그리고 ABC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 MBC에서부터 나도 갑자기 머리가 멍 하고 힘이 없는 것이 고소증세인 듯 싶었다. 고소증세는 사전에 예고하고 오는 법이 없다. 갑자기 길을 가다가 증세가 나타난다.
사실 일행 13명 중에는 이미 어제부터 머리가 아픈 고소증세가 나타난 분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을 위해서 준비해 간 고소예방약(다이아막스)를 한 알씩 복용했었다. 그러나 나는 약을 먹지 않았다. 현재까지 나온 약 중에서 완전한 고소약이 없을뿐더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산행이 끝나면 나는 다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높이는 4,130미터이지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높이는 5,364미터에 달한다. 또한 앞으로 등정하려고 하는 칼라파트라는 해발 5,550미터의 높이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산소를 발생하는 나무가 많지만 에베레스트 지역은 나무가 전혀 없어 산소가 더 희박하다. 두 산은 전혀 다른 산이라는 것이 내가 만났던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산악인의 이야기였다. 때문에 나는 스스로 고소에 노출시켜보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 여러 해 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산(4,095m)을 등정할 때에도 라반라타산장(3,272m)에서 가벼운 고소증세를 느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진통제 한 알을 먹고 자니 거뜬해졌었다. 나는 고소증세를 내색하지 않고 참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운행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매가 매서운 사람에게는 나의 상태가 노출되는 모양이다. 일행 중의 한 명이 다가와 내게 "고소증세가 온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말해주었다.
>>9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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