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규제·교육·금융·공공부문 등 제도 바뀌어야"
"우리나라는 규제 공화국이다.
혁명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점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사회 전반의 기득권과 집단이기주의가 없어져야 한다.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창의력인데, 기득권이 강할수록 창의력이 발휘되기 어렵다." "지금까지 성공한 이 시스템을 버리지 못하고 안주하면 뒤처질 수 있다. 우리가개발도상국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던 것처럼 한국만의 새로운 선진국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단계다." 점점 떨어져 가는 우리나라의 경제·산업 경쟁력을 두고 경제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유병규 산업연구원장 등 국내 주요 학회와 연구소 수장들은 입을 모아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고, 기업 경쟁력을 옭아매는 규제를 혁파하고,대학 진학 위주로 돌아가는 교육 제도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공을 이끈 기존의 모델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우리나라만의 새로운선진국 모델을 만들어야 할 때라는 제안도 나왔다.
이들은 또 창의력과 역동성이야말로 한국의 강점이라며 이를 살릴 수 있도록 과감한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동·규제·교육 개혁해야…혁명적인 조치 필요"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교수 경쟁력을 키우려면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는 개혁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 규제 개혁, 교육 개혁 등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 노동시장은 너무 유연하지 않다. 해고를 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정규직채용을 하지 않으려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 돈은 60%까지 낮게 받는 것은 안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경직성을 빨리타파해야 한다.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야 사람들도 빠르게 맞는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규제개혁도 시급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방에 있는 것이 규제다. 규제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 개혁이다. 지금처럼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풍토를 없애야 한다. 대학 수준의 교육은 일을 하면서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대학들도 많이 없어져야 한다. 실용적 교육, 평생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 우리교육은 너무 방만하고 구태의연하다. 교육부부터 대폭 뜯어고치는 교육 대개혁이 필요하다.
공공개혁, 금융개혁 등도 이뤄져야 한다. 혁명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혁명적인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점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이 밖에 다른 차원에서 산업별 경쟁력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경기가 나빠서 안좋아지는 산업이 있는 반면, 근본적으로 구조가 나빠지는 산업이 있을 것이다. 이런산업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직성 때문에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이 없지 않은가.
답은 나와 있다. 그런데 실천하는 것을 정치권이나 정부 모두 회피하고 있다. 5년 단임제의 대통령 임기가 이제 1년 반 남았다. 남은 기간에 많은 일은 할 수 없다. 남은 기간에 개헌까지 고려해서 제도를 잘 만들었으면 한다. 야당에서도 고질적인발목잡기만 할 것이 아니라 협력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답이 있는데 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비극이다.
◇ "기득권·집단이기주의 없애고 경쟁시켜야"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한국 경제·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기업경쟁력인데규제가 너무 많다. 한국처럼 자원도 없고 기술과 사람뿐인 나라에서는 얼마나 빨리신축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네덜란드나 스위스, 덴마크가 우리와 비슷한 환경인데 여기를 보면 어느 나라보다 개방적이고 외국인이 들어와 기업 하기도 좋다. 법도 잘 지킨다. 특히 노동시장이 유연하다.
영국이나 독일의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다가 이를 극복했는데 그 원동력은 노동개혁과 공공부문 개혁에서 시작됐다. 사회 전반의 기득권과 집단이기주의가 없어져야 한다. 기득권의 특징은 평가받기 싫어하고 경쟁하기 싫어한다. 이들을 경쟁시키고 평가해야 경쟁력이 살아나고 개혁이 된다.
한국의 가장 큰 강점은 창의력이다. 지금까지 성장하는데도 창의력이 큰 몫을했다. 그런데 기득권이 강할수록 이런 창의력이 발휘되기 어렵다. 창의력이 발휘되고, 그로 인해 성공할 수 있게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한다. 만들어진 제도들이 잘 지켜지는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 "문제 있는 중소기업 연명시키고만 있다…경쟁력 강화해야"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고 싶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을 도와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 있는 중소기업을 연명시키는 데 그치고 있다. 수많은 중소기업 중 정책자금을 받는 곳이 한정돼 공평성 문제마저 생기고 있다. 취지는 좋으나 정책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것이다. 이는 20년 넘은 구조적인 문제인데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DI가 연구를 해보니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부가가치가 더떨어진다. 생존율만 올라간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 일부 정치권 등에서 중소기업을 더 도와줘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이 있는 중소기업에 성과주의 방식으로 정책자금을 줘야 하는데, 성과를 보지 않고 주는 게 문제다. 규모가 어느 정도로 성장하고, 업력이 20년씩 된기업들이 정책금융기관에서 보증을 받는다. 이 보증은 계속 갱신되기까지 한다. 젊은 창업 기업들에 보증이 가야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형평성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늙은 기업들, 정책금융으로 연명하려는 기업가 정신 없는 기업들에 보증이 가고 있다.
성장성 있는 창업 기업에 보증을 해서 부도가 날 경우 담당자 면책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보증사고가 나면 신용보증기금 담당자들이 승진을 못 하고 정책감사를 받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보증 담당자들이 젊은 기업에 보증을 내주기 어렵다. 본인이 자리에 있을 때 보증사고를 안 내면 되니 문제기업 보증을 계속해서 갱신해주는 '폭탄 돌리기'를 하게 된다. 중소기업청 공무원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소신껏 성과주의 방식으로 보증을 해주자는 얘기를 하기 어렵다.
◇ "제도 경쟁력 강화 필요…노동·금융·공공·교육제도 바뀌어야" 유병규 산업연구원장 경제·산업 경쟁력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가격경쟁력과 기술 경쟁력인 비가격경쟁력, 제도 경쟁력이다. 국가 경제가 발전할수록 가격경쟁력에서 비가격 경쟁력,제도 경쟁력으로 강점이 넘어가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비가격 경쟁력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제도 경쟁력의 강점으로 진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격경쟁력에서 앞서고 비가격 경쟁력까지 쫓아오는중국에 빠르게 쫓기고 있다.
지금은 제도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단계이다. 과거의 제도에서 벗어나 더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가려면 대표적으로 노동과 금융, 공공, 교육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 분야에 만연한 기득권이나, 비생산적 활동만 하려는 지대추구(rent-seeking) 문제를 깨야 한다. 성공의 함정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성공한 이 시스템을 버리지 못하고 안주하면 뒤처질 수 있다. 관행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한다.
한국은 그동안 특정 국가를 모델로 이들의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쫓아갔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특정 국가를 쫓아가기에는 시스템과 산업이 너무 복잡해져 있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던 것처럼 한국만의 새로운 선진국 모델을만들어야 하는 단계이다.
한국의 강점은 경제가 활력을 가지고 새로운 것에 신축적이고 역동적으로 대응하는 점이다. 또 위기가 있을 때는 에너지를 응축시키는 힘이 있다. 그런데 이런 강점이 많이 약화하고 있다. 기득권이 이런 활력과 역동성을 막고 있다. 신축적이고역동적인 강점이 나올 수 있도록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게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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