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은 서울, 과장은 길바닥에, 사무관은 세종시"분권화로 의사결정방식 확 바꿔야…국회 역할도 중요"
"장관은 서울에, 사무관은 세종시에, 과장은 길바닥에 있다".
주요 경제 부처들이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전한 이후 해당 공무원들이 요즘 종종하는 농담 아닌 농담이다.
부처의 수장인 장관은 국회와 청와대, 관계 부처가 있는 서울에서 대다수 일정을 소화하고 실무를 맡는 사무관급 이하는 세종시에서 머무르면서 근무 중이기 때문이다.
과장급은 세종시에서 사무관급 이하 직원들과 실무 회의를 진행하고 수시로 서울을 오가면서 장관이나 국장을 보좌하느라 허리가 휜다.
◇서울·차안에서 업무 보는 장관들 세종시로 내려온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말을 13일 종합해보면 상당수 공무원은정부 세종청사가 아닌 길바닥에서 혹은 서울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장관들은 몸은 서울에 있으면서 마음만 세종시에 가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종시 근무를 될 수 있으면 늘리려고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 부총리는 월요일 오전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요일 오후에 세종시의 관사로 내려오기로 했다.
화요일에 국무회의, 수요일 경제장관회의, 목요일 대외경제장관회의, 금요일 국가정책회의 등 서울 일정이 매일 잡혀 있는 만큼 월요일에라도 세종시에서 업무를보면서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난 4월에는 임시국회에서 추경안 통과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면서세종시에서 근무한 시간이 일주일에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야전사령부 격인 서울예금보험공사가 사실상 근무지가 돼 버렸다.
오전 8시에 서울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하고서 11시에 세종청사에서추경 브리핑을 하고 오후 4시에는 서울 예금보험공사에서 주한뉴질랜드 대사를 면담하기도 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오전 11시 경기도 화성에서 철새 도래지 소독 현장을 둘러보고서 오후 2시 서울에서 한우소비촉진 행사 참가, 다시 1시간 뒤 서울에서 농식품수출탑 시상식 참석, 오후 5시 경기도 과천 마사회에서 업무보고 청취를한 날이 있다.
이처럼 이동 시간이 많다보니 장관들은 흔들리는 차 안에서 업무를 봐야 할 때도 잦다. 신속한 이동을 위해 버스전용차선에 들어갈 수 있는 그랜드카니발 차종을선택해 보좌진들과 회의를 하면서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 피곤·허리 통증 호소…"결국 같은 살림 2곳에" 청사는 세종시로 이전했지만, 주요 일정이 서울에서 이뤄지면서 청사 이전을 믿고 거처를 세종시로 옮긴 공무원도, 서울이나 과천에 거처를 둔 채 세종시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국회로 추경 예산안이 제출된 이후 거처를 세종시로 덜컥 옮겨버린 기재부 예산실 직원들은 서울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해야 했다.
서울에서 거의 매일 자정을 넘기는 일정이 진행되는데 이미 세종시로 집을 옮겨버렸으니 잘 곳이 없었던 것이다. 호주머니가 얇은 사무관 이하 공무원들은 서울의숙박시설 중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거의 한 달을 살았다. 숙박비지원은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서울청사나 세종청사에 직원들이 임시로 머물 숙소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에서 세종시로 통근하는 직원들은 부쩍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통근버스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하루에 4~5시간을 버스에서 보내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세종시에서 체류하는 날이 많은 사무관 이하 공무원들과 달리 과장급 공무원들은 서울과 세종시에서 그야말로 두집살림을 하는 사례가 많다.
장관이나 국장급의 서울 일정을 보좌하면서 세종시에서 진행되는 실무급 일정도챙겨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의 절반쯤을 서울에서, 절반쯤은 세종시에서 보낸다.
장관급과 달리 딱히 머물 공간이 없는 과장급들은 서울청사나 과천청사에 있는스마트워크센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기재부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양쪽을 오가다 보니 가족이 있는 서울과 세종시근처 원룸에 똑같은 살림을 마련하게 된다"면서 "경제 현장은 서울에 있는데 공무원들은 세종시에 있으니 나타날 수밖에 없는 행정 비효율"이라고 꼬집었다.
◇의사결정 분권화…정부운영방식 개혁해야 전문가들은 합리적인 일정 조율이나 스마트행정 시스템의 활용도를 높여 행정효율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회의나 행사 외에도 서울에서 사람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비공식 일정도 많아서 뾰족한 묘안이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영상회의와 같은 하드웨어적 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정운영과 부처 내의사결정을 분권화하는 소프트웨어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행정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정부도 영상회의 확대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기반시설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영상 회의장은 현재 서울청사와 세종청사에만 갖춰져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주요 지점 여러 곳에 영상회의장을 갖춰 업무 도중 가장 가까운 회의장으로 이동해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업무처리 방식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책임총리제와 책임장관제를 실질적으로 가동해 국정운영을 분권화하고 부처 내부에서도 전결권한을 확대하는 방식 등으로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부처 이전 과도기의 행정비효율은 처음부터 예상됐던 문제들"이라며 "영상회의 활성화 등 하드웨어적 개혁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결정 권한을 분권화하는 국정운영 시스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 협조가 가장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의원들이 권위를 내세우며장관이나 고위관료를 호출부터 하고 보는 관행을 없애고 상황에 따라 영상회의 참석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 간 영상회의 시스템은 8월에나 기획재정위원회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종원 가톨릭대 행정학 교수는 "행정효율보다 지방균형발전이 더 중요하다는판단에서 행정부 이전을 추진했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에서는 뾰족한 대안이 나오기어렵다"며 "정부가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만 길에서 시간을 버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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