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철저하게 사실만 기록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세조 시대엔 속리산의 정이품송 일호와 같이 사실이라고 믿기 힘든 기이한 현상들이 40여차례나 등장한다. 이건 초자연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누군가 조작해낸 환영일까.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은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며 발랄한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작품이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이 죽은 후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역적'으로 평가할 것이 두려웠던 왕 세조(박희순). 그를 왕으로 만들어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한명회(손현주)에게 필요했던 건 '정통성'과 '민심'이었다.
하지만 적통이었던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에게 정통성을 기대하긴 힘들다. 백성들 역시 죽은 단종과 사육신을 진정한 왕과 신하로 기억했다. 더욱이 천한 줄 알았던 광대들이 수양대군의 반정과 단종의 유배, 사육신의 처벌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마당극으로 펼쳐 보이면서 이들을 괴롭히는 풍문은 더욱 커져갔다.
소문을 소문으로 잡기 위해 한명회는 '풍문조작단' 광대들을 찾아갔다. 기껏해야 불륜을 조작하는 정도였던 풍문조작단 단원들은 더욱 커진 판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구현해냈다. "세조가 행차하니 나뭇가지를 들어 올렸다"는 정이품송 뿐 아니라 오대산 문수보살, 원각사 꽃비 등 이적 현상을 연출해냈다.
풍문조작단의 연출능력은 조명과 음향, 와이어를 이용한 특수효과까지 다방면으로 펼쳐진다. 조선이라는 한정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기가 막히는 상상력은 영화를 보는 내내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줄에 매달려 하늘 높이 떠오르는 보살을 연기하기 위해 살을 빼려 러닝머신을 뛴다거나, 꽃비가 터지는 설정 등에 어이가 없다가도, 그 역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게 '광대들'의 묘미다.
영화 톤은 B급 유머를 추구하지만 마냥 가볍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안명회와 세조의 권력에 대한 욕심, 이를 위해 여론까지 조작하며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현대의 가짜뉴스, 댓글조작 등이 겹쳐질 만큼 묵직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에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광대패 우두머리 조진웅을 비롯해 욕망의 화신 한명회 역을 맡은 손현주의 연기 대결은 후반부에서 늘어지는 극의 전개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다.
해석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인 기록에 상상력을 가미했다는 점에서 왜곡 논란에도 자유롭다.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을 위한 영화다. 2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런닝타임 108분.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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