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세계 금융시장…곳곳서 동시다발 불황 징후
대외의존도 높은 한국이 외부 환경 변화에 가장 취약
온갖 규제로 기진맥진한 기업들 힘 실어줄 정책 시급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제대국들이 흔들리면서 동반 침체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 국가인 한국엔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완연하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지난달 산업생산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4.8%에 그쳤다. 2002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독일(-0.1%)과 영국(-0.2%)은 지난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지난 14일 강력한 불황 신호로 해석되는 장·단기 채권금리 역전(장기채 금리가 단기채 금리보다 낮아지는 것) 현상이 발생하며 주가가 급락했던 배경이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8.8%(2017년)에 이른다. 상당수 해외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이 세계 경제 침체의 가장 큰 피해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증시가 최근 ‘올해 세계 최악의 증시’(블룸버그통신 집계)란 오명을 쓴 것도 이런 외부 시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몰려오는 외부 악재들을 견뎌내려면 무엇보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 기초체력이 튼튼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과 달리 투자·생산·수출·소비 등 각종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설비투자 감소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올 1분기 설비투자는 10.8% 급감했다. 반면 올 1분기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44.9% 증가했다. 최저임금 급속 인상,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 경직화된 노동시장 등 반(反)기업 정책에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가 적지않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수도권 규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으로 대표되는 입지·투자·노동·진입 규제 등 소위 ‘4대 규제’는 ‘투자 엑소더스’를 부채질하고 있다.
투자 해외 유출도 문제지만 그나마 기업 내에 쌓여있는 자금의 사용처도 미래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95곳이 보유한 현금은 약 248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인수합병(M&A) 등 미래 먹거리 투자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경영권을 위협하고 지배구조 개선과 고(高)배당 등을 강요하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등의 탓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올해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에 2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할 계획이다.
원격의료,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우리 경제의 저변을 넓혀줄 신(新)산업은 기득권층의 반발과 겹겹이 쌓인 규제에 막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기업과 기업인이 잠재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정부와 여당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경제민주화법’ 대신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활력법’ 통과에 방점을 두기로 했다고 한다. 세계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비상상황에서 고무적인 소식이다. 하지만 경제 활력을 되살리고 기업투자를 회복시키려면 이 정도의 조치로는 부족하다. 경제전쟁의 첨병인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도록 입지·투자·노동·진입과 관련한 반(反)시장적 규제를 전면 재정비해 발에 채운 모래주머니를 풀어줘야 한다. 정책 대응이 늦어져 우리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지 않도록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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