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재판장에 들어간 고유정. 이번에도 카메라에 얼굴을 감추는 데 성공했나 싶었다.
재판 중에는 비교적 침착했던 고유정은 재판을 끝내고 호송차로 오르기 위해 이동하던 중 분노한 한 시민에게 머리채가 잡혔다.
머리채를 잡힌 고유정은 더욱 고개를 숙였고, 주위 시민들은 고유정을 향해 몰려들어 소리쳤다. 머리채를 잡은 시민은 고유정을 앞으로 끌고 가며 당겼다. 제주교도소 관계자들의 제지로 고유정은 겨우 풀려나 호송차에 올랐지만 이 과정에서 주변 시민들은 고유정을 향해 “살인마”를 연신 외쳤다.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끔찍한 사건에서 재판을 지켜본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치솟게 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고유정은 첫 재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살해된 전 남편 강 모씨를 변태성욕자로 표현했으며 범행 동기는 남편의 성폭행 시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유정 변호인은 재판 도중 강씨의 강한 성욕을 강조하며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피해자 측에 돌렸다.
아들과의 면접교섭이 이뤄지는 동안 강씨가 스킨십을 유도하기도 했고, 펜션으로 들어간 뒤에도 수박을 먹고 싶다는 아들이 방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싱크대에 있던 피고인에게 다가가 갑자기 몸을 만지는 등 성폭행을 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설거지를 하는 평화로운 전 아내의 뒷모습에서 옛날 추억을 떠올렸고, 자신의 무리한 성적 요구를 피고인이 거부하지 않았던 과거를 기대했던 것이 비극을 낳게된 단초"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피고인이 폐쇄회로(CC)TV에 얼굴을 노출시키면서 한 모든 일련의 행동은 경찰에 체포될 수 밖에 없는 행동으로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며, 카레에 넣었다고 검찰이 주장하는 졸피뎀을 강씨가 먹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불 등에 묻은 혈흔에서 졸피뎀 반응이 나왔다고 하지만 이 혈흔은 피고인이 강씨와 몸싸움을 하던 과정에서 묻은 고씨의 혈흔이지 강씨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재판을 지켜본 한 시민은 "어느 정도 상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피해자를 한순간에 파렴치한으로 만들어 듣기가 거북했다"고 방청 소감을 전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유정사건은 형사사건이므로 단순한 주장은 어떠한 의미도 없고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검찰은 고유정 변호인 주장에 휘둘리지 말고 꼼꼼하고 치밀하게 증거로 입증해서 범죄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한 시민이 고유정의 머리채를 잡는 일도 발생했다. 고유정 사건은 엄격한 법집행에 의해 합당한 처벌 이루어져야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유정이 수면유도제 졸피뎀을 검색한 이유는 버닝썬 사태 당시 호기심에 검색했고 뼈중량·강도 등 검색한 이유는 남편 보양식으로 감자탕 검색하다 연관검색어로 자연스럽게 이동한 것이라고 주장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사임하기로 결정했다.
5명의 변호인단으로 구성됐던 변호사의 법무법인이 고유정 변호를 맡지 않기로 결정한 후에도 나홀로 "우발적 범행 했다는 증거가 있다"면서 고유정을 두둔하고 법무법인을 나와 혼자 맡겠다고 했던 결정에 이어 또 변경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것이다.
한편 적극적으로 계획적인 살해 혐의를 부인한 고유정은 현 남편에 대해서 의붓아들 살인혐의를 씌웠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고유정이 강씨가 자신을 성폭행한 사건으로 꾸미려 "강간하려 해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까지 조작한 마당에 오는 9월 2일 2차 공판에서 검찰이 고유정의 혐의를 입증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