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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인물] 독립운동가 이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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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 장현주 기자 ] 독립운동가 이봉창 선생은 1901년 8월 10일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요즘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인이 하는 과자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직원들로부터 차별과 설움을 겪으며 민족의식에 눈을 떴고 항일의지를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봉창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 도쿄, 요코하마 등지에서 철공소 직원, 잡역부, 날품팔이 등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그가 독립운동에 본격 투신한 것은 1931년 상하이 임시정부를 직접 찾아가면서였다. 갓 서른 살을 넘긴 청년 이봉창은 백범 김구가 결성한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곧이어 일왕 암살계획에 참여했다. 1931년 12월 13일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공근의 집에서 수류탄을 양손에 든 채 사진을 찍는 등 의거를 위한 선서식을 하기도 했다.

1932년 1월 8일, 이 의사는 도쿄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 일행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하지만 수류탄의 성능이 좋지 않아 호위무관이 다치고 마차 일부만 파손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1932년 10월 10일 도쿄 신주쿠에 있던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광복 후 백범은 이 의사의 유해를 돌려받아 1946년 서울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함께 안장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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