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일본의 2차 경제 보복으로 국내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여행 자제 움직임이 한층 불이 붙을 전망이다.
◆'보이콧 재팬'에 일본맥주·유니클로 등 타격…영역 확산
국내에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이례적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불매운동 대상도 일본 맥주와 패션 브랜드, 화장품 등 상대적으로 저가 제품에서 자동차, 의약품 등으로까지 확산일로다. 소비자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시작된 불매운동에 택배와 마트 등 일부 노동조합, 지방자치단체까지 동참하며 한층 조직화하는 분위기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식음료 제품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품목은 일본 맥주다. 지난달(30일 기준) 일본 맥주 매출은 편의점 CU에서 전년 동기보다 51% 감소해 반토막이 났다. 또 다른 편의점 GS25에서도 일본 맥주 매출이 40.6%나 깠였다.
국산 맥주나 다른 수입 맥주 매출은 늘어 반사이익을 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CU에서 국산 맥주 매출은 7.2% 뛰었고, 일본을 제외한 수입 맥주 매출 역시 7.5% 늘었다.
맥주 시장 선두권을 유지하던 일본 맥주의 순위도 가라앉고 있다. GS25에 따르면 대용량(500ml) 캔맥주 매출 1위 왕좌에 올라 있던 아사히는 지난달 7위로 굴러떨어졌다. 오비맥주의 카스에게 1위 자리를 뺐겼다. 지난해 7월 매출 7위, 9위에 올라 있던 기린이치방과 삿포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패션업계의 경우 일본 대형 제조·직매형 의류(패스트패션·SPA) 브랜드 유니클로에 이어 신발 편집숍 ABC마트 등에 대한 불매 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유니클로의 경우 불매운동 초기에 일본 본사 임원의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발언이 확산되며 여론이 경색됐다. 유니클로 측은 이후 두차례나 사과문을 냈지만, 불매운동의 대표 브랜드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연대노조는 유니클로 제품은 배송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이달 초 유니클로 종로3가 지점이 철수 절차에 들어가면서 불매운동 후 첫 폐점으로 관심을 사고 있다.
유니클로에 이어 ABC마트도 불매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기업이미지(CI)를 'ABE(아베)'마트로 바꾼 이미지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불매운동은 실제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한 백화점에 따르면 지난달 1∼30일 백화점 매장에 입점한 유니클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감소했다. 꼼데가르송과 이세이미야케 등 일본 패션 브랜드 역시 10% 이상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불매 운동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일본차 기업들도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닛산은 지난달 16일 계획한 '신형 알티마' 미디어 시승 행사를 취소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고려한 마케팅 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수입 맥주 '4캔에 1만원' 할인 행사에서 일본 주류를 모두 제외하기로 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는 일본산 제품은 선물세트에서 제외했다.
기초지방자치단체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등 한층 조직화되는 분위기다. 서울 서대문구, 중랑구, 경기 수원시 등 전국 52개 기초단체로 구성된 '일본 수출규제 공동대응 지방정부 연합'은 지난달 30일 일본 수출규제 조치 규탄대회를 열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지지하며 동참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보이콧을 지지하고 동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 강남구는 이날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에 대한 항의 표시로 테헤란로, 영동대로, 로데오거리 일대 만국기 중 일장기를 철거했다. 지난해 7월 민선 7기 출범 후 강남구는 국제교류복합지구 이미지 조성을 위해 태극기와 함께 만국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대전시약사회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철회될 때까지 일본산 의약품 판매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대구 등지에서도 카베진과 화이투벤 등을 팔지 않는 약국이 나왔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대체 제품 정보 사이트인 '노노재팬' 등이 소비자들 사이에 퍼지면서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계속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유통업계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광복절이 있는 8월까지는 불매운동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일본 가지 않습니다" 여행객 급감…예약 취소 줄잇고 항공사 노선 줄여
여행·항공업계에서 번지고 있는 일본 여행 거부 운동 여파도 확산될 전망이다. 휴가철이지만 일본 여행 예약은 급감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예약 취소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9월께부터는 수요 부재가 한층 심화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국내 해외여행객 유치 1, 2위 업체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일본 여행 신규 예약자 수는 일본 여행 거부 운동이 본격화된 지난달에만 전년 동월 대비 70~80% 급감했다. 일본 여행 취소율도 지난달 중반을 넘으며 늘어나는 추세로 전해졌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을 찾은 여행객은 지난달 하순부터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7월15일 이후 인천공항을 통해 일본에 다녀온 여행객 수가 60만8000명으로 전년 동기(62만명)보다 1만1000명(1.8%)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인천공항의 전체 공항 이용객 수가 작년보다 7.22%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이에 일본 노선 비중이 큰 저비용항공사(LCC)에 이어 대형항공사(FSC)에서도 일본 노선 운항을 축소하는 움직임이 줄을 잇고 있다.
대한항공은 부산∼삿포로 노선 운항 중단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인천발(發) 일본 노선 4곳에서도 좌석 공급을 줄이기로 했다. 이달 중순께부터 10월까지 현재 운영 중인 중형기 대신 다른 기종을 투입해 공급을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우선 10월 26일까지 해당 노선에서 변경된 기종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추석 연휴 등 일부 기간은 제외하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달 30일 투입하는 기종을 바꾸는 방식으로 인천발 일본 노선 공급을 축소하겠다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은 9월부터 인천∼후쿠오카·오사카·오키나와 노선에 투입하는 항공기를 'A330'(290석)에서 'B767'(250석), 'A321'(174석) 등 기종으로 변경한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은 한발 앞서 노선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했다. 티웨이항공의 경우 무안∼오이타 노선 운항 중단에 이어 9월부터 대구∼구마모토, 부산∼사가 등 정기편을 멈추기로 했다. 이스타항공도 9월부터 부산∼삿포로·오사카 노선 운항을 정지시킨다는 계획이다. 에어부산은 9월 1일부터 대구∼오사카 노선을 2편에서 1편으로 줄인다.
일본 여행 거부 운동은 올 하반기 내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지인해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9~10월에 출발하는 일본 여행상품은 취소해도 취소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순취소가 대거 집중되고 있다"며 "당연히 일본행 신규 수요 유입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성준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 역시 "최근 한·일 갈등으로 인한 일본 여행 감소 때문에 적어도 향후 3개월 간은 여행업계의 패키지 예약율 역성장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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