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는 순우리말이다. 같은 말로는 ‘재’와 ‘티’가 있다. 서울의 한티 역시 큰 고개를 알리는 지명이다. 한자 세계에서 고개를 알리는 글자는 峙(치), 嶺(령), 崗(강)이다. 우리말로 알려진 ‘티’는 峙(치)의 옛 발음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峙(치)는 비교적 넘기 쉬운 고개, 험준한 산의 흐름에 있는 높은 고개는 嶺(령)으로 나누기도 한다. 충북 영동의 추풍령(秋風嶺), 한자로 鳥嶺(조령)이라 적는 경북 문경의 새재는 모두 높은 고개다. 그에 비해 崗(강)은 ‘언덕’ 정도다. 그런 언덕에 난 고개를 이 글자로 적는데, 중국에서 쓰임이 많다.
중국의 4대 기서인 《수호전(水滸傳)》의 주요 인물인 무송(武松)이 뛰어난 완력으로 호랑이와 맨주먹으로 싸워 이겼다는 고개 이름이 경양강(景陽崗)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제갈량이 유비를 만나기 전 머물던 곳은 와룡강(臥龍崗)이다.
우리는 고개를 峴(현)으로 적을 때가 많다. 서소문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아현(阿峴)이 그렇고, 그 고개 밑의 동네를 현저동(峴底洞)으로 적고 있다. 아울러 강남의 복판인 논현(論峴)도 고개 너머에 발달한 논을 가리키다 얻은 동네 이름이라고 한다.
대치(對峙)라는 한자 낱말은 본래 고개가 들어설 정도의 지형인 두 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음을 형용했다. 峙(치)는 따라서 원래 새김이 우뚝 솟아 있는 산의 모양을 가리킨다. 결국 마주보고 서로 섞이지 않는 상태, 즉 대립(對立)의 뜻으로 자리잡았다. 양립(兩立), 병립(竝立)으로 적어도 비슷한 뜻이다. 상지(相持)도 하나의 물건 등을 두고 둘이 다투는 형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치(相馳)라고 적으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말을 몰고 가는 일, 역시 대립이 심화하는 경우다. 의견이 아주 달라 등을 돌리고 가버리는 일, 배치(背馳)와 같은 새김이다.
일본과 다툼이 더 심해진다. 대립과 대치에 이어 점차 더 사이를 벌리는 상치, 배치의 분위기다. 이럴 때 갈등을 잠재울 외교적 역량을 펼쳐야 한다. 우리 외교당국의 주의와 집중이 필요하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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