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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위기의 유럽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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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광엽 기자 ] 벤츠 지멘스 바스프 같은 독일 특급 제조기업을 속속들이 꿰는 사람들도 그 ‘제조강국 신화’를 함께 쓴 독일의 금융시스템을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증권시장과 투자은행(IB)이 주도하는 미국과 달리, 독일의 전통적인 금융시스템은 대출과 은행 중심이다.

독일 은행들은 설립 단계에서부터 기업경영에 관여하고, 출자도 보편화돼 있다. 영국 미국에 비해 산업화가 늦었다는 초조함이 만들어낸 독특한 기업 자금조달 시스템이다. 이런 금융시스템이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으로 전파됐다.

미국식 금융제도와 대척점을 이루는 독일 금융의 대표주자가 설립 150년째인 도이체방크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미국 JP모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IB이자 ‘유럽계 금융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도이체방크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경영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직원의 20%인 1만8000여 명을 감원하고, 보유자산의 절반가량을 정리하기로 해 국제금융계에 충격을 던졌다.

위기는 IB업무 실패에서 비롯됐다. ‘독일 금융의 전설’ 알프레트 헤르하우젠 전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가 1980년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영미권의 금융문화”라며 IB사업을 확장한 게 화근이 됐다. 1989년 영국 IB 모건그렌펠, 1999년 미국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하며 한때 자산기준 세계 1위로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면서 시작된 부실이 깊어지며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크리스티안 제빙 CEO는 감원을 발표하며 “우리는 원점으로 회귀한다”고 토로했다. IB사업에 대한 사실상 포기선언이다. 유럽 최고 은행이 전력투구한 ‘미국 따라잡기’의 냉정한 결말이다.

도이체방크는 유로존은 물론이고 세계 은행들과 여러 파생상품 계약으로 얽혀 있는 만큼 만만찮은 후폭풍을 예고한다. 유럽 경제는 진퇴양난의 위기다. ‘마이너스 금리’ 등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총동원했음에도 경기부양 효과는커녕 ‘대마(大馬)’의 위기로 귀결되고 만 점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다음 선택을 극도로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다.

도이체방크만의 일도 아니다. 크레디트스위스, UBS 등 다른 유럽 대형 은행들의 실적 역시 줄줄이 미끄럼이다. 작년 2분기부터 1년여 지속되고 있는 유럽 경제의 부진이 ‘유럽의 잃어버린 10년’으로 비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백광엽 논설위원 keoc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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