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업종에서 영업 업무는 어렵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약회사 영업 업무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난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지요. 김 주임도 제약사 영업직군에 지원했을 때 그 정도 각오는 했답니다. 하지만 막상 몸으로 부딪혀본 현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출근 첫 날 약국으로 외근을 나갔던 김 주임은 곧 바로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어디에서 온 누구라고 인사를 마치자마자 약사가 “야 왜 들어와, 나가!”라고 소리를 치더랍니다. 반말은 기본이고 거의 잡상인 취급을 당한 거지요. 그래도 영업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죄송하다고 인사하고 나갔다가 10분 쯤 뒤에 다시 들어가서 어떻게든 인사를 하고 나오는 식으로 안면을 익혀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자기가 맡은 구역의 병원과 약국을 도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김 주임처럼 새로 들어온 영업직원은 아는 사람도 없고 하니 무조건 많이 돌아다니면서 명함을 돌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전박대는 차라리 견딜 만 합니다. 모든 의사, 약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제대로 갑질하는 ‘쓰앵님’들도 제법 있다는 겁니다. 가령 어떤 의사는 자녀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픽업해오라고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출근 시간에 불러서 운전 기사처럼 부리는 사례도 있고요. ‘설마’ 하는 일들이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는군요.
명절에 선물 돌리는 것도 기본이죠. 문제는 이런 비용을 김 주임이 자기 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어떤 거래처는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쟁 제약사 제품으로 바꿔버리는 사례도 있답니다. 제약회사가 일반 제조업체보다는 연봉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이런 식으로 자기 돈 들여서 영업하다 보면 별로 남는 게 없다는군요. 이러다보니 가족, 친지들끼리 오랜만에 얼굴 맞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명절이 스트레스 거리로 전락한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뛰어도 실적을 못 채울 경우가 많아서 괴로움은 더욱 커집니다. 팀장이나 윗 사람들은 ”김 주임 이 XX, 넌 밖에 나가서 하루 종일 노냐?” 같은 모욕적인 말을 서슴없이 한답니다. 가뜩이나 실적 부진에 위축돼 있는데 저런 말까지 들으면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질 수 밖에 없겠죠.
급기야 실적이 안 나오면 자기 돈으로 약을 사서 목표량을 채워넣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답니다. 회사에서 명시적으로 지침이 내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영업 직원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이런 편법을 쓴다고 합니다. 일단 사비를 들여 약을 사들인 다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알아서 팔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인들에게 약을 강매하는 건 한계가 있겠죠.
팀장이나 직급이 높은 상사들은 따로 판매처를 두고 자기가 사들인 약을 처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단 영업사원에겐 ‘그림의 떡’이죠. 결국 개인이 떠 안고 말거나 거래처에 읍소하면서 사정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하네요. 가령 주문이 안 들어온 약을 일단 거래 약국에 보냅니다. 그리고는 약국을 찾아가서 무릎 꿇고 약사에게 빈답니다. ‘이번 한 번만 반송하지 않고 물건 받아주면 제가 시간을 두고 반품처리 해 드리겠다. 저 좀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거지요. 그런데 한 번은 이렇게 넘어가도 그 다음에 똑같은 방법은 쓰기가 힘들죠. 결국를 ‘실적 달성 실패 → 목표만큼 일단 주문 → 되팔거나 반품 처리 → 재고는 개인이 부담‘하는 식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든 버텨야겠다고 생각했던 김 주임이지만 결국 ’결정타‘가 터지면서 더 이상 회사를 다니기 힘들다고 결심하게 됐답니다. 김 주임이 소속된 팀이 실적을 못 채우자 팀장이 목표만큼 선주문을 하고 도매상에 제품을 넘겼습니다. 가령 800만원어치 선주문하고 도매상에는 600만원에 넘긴 거지요. 그러면 200만원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팀장이 손해금액을 팀원들끼리 ’N분의 1‘을 해서 메우자고 주장했답니다.
김 주임이 참을 수 없어서 반대했더니 오히려 팀장은 ‘이기적인 XX’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 등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퍼부었답니다. 결국 김 주임은 그 다음날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사표를 내고 난 후 회사 내 반응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답니다. ‘또 한 명 나가는구나‘ 이런 식의 분위기가 있더라는 겁니다. 제약 영업직의 이직률이 워낙 높다보니 모두들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더라는 얘깁니다.
김 주임은 앞으로는 자신이 존중받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합니다. 대단한 대접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만 봐 주는 조직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디를 가든, 김 주임이 원하는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퇴사의 이유에서 사연을 받습니다.
억울한 대우를 받아서, 부당한 조직문화에 지쳐서 등 퇴사를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dilive@hankyung.com 혹은 hkdlive@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 위로와 공감되는 영상으로 속시원히 풀어드리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