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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시간을 잊는 완벽한 그 곳, 탁발승 발걸음처럼 고요한 루앙프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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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류진의 와일드 노마드 라이프 (5) 라오스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에 가본 적도 없는데 이 도시의 이름을 자주 읊었다. 주로 일에 치일 때, 열흘 이상 야근할 때, 인생 굴러가는 속도에 멀미가 날 때 “루앙프라방에서 한 달만 어슬렁거리고 싶다”고 한탄했다.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탁발’뿐이었다. 주홍 천으로 몸을 두르고 바구니를 맨 채 맨발로 소리 없이 걷는 평온한 승려들. 언제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이 장면 때문에 환상 비슷한 게 생겼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안식처가 있다면 아마 거기일 거야.’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내내 그 승려의 발걸음만큼이나 고요하고 군더더기 없는 시간을 보냈다. 초행길에 품는 막연한 기대는 대개 깨지기 마련인데, 매 순간이 상상한 그대로였다. 사진과 판이한 풍경, 고요와 거리가 먼 유적지, 관광객의 속을 긁는 바가지 상술이 필연처럼 따르는 여타 도시와 이곳은 확실히 달랐다. 설사 이 모든 걸 겪었다고 해도, 루앙프라방의 고유한 분위기 앞에서 그런 건 하찮은 날파리 같은 요소일 뿐. 한 도시에 이렇게 맹목적인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나? 루앙프라방을 편애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렇다.

흉내만 내도 좋아, 탁발 의식

루앙프라방은 독실한 불교국인 라오스 안에서도 ‘불도’로 불리는 종교적인 지역이자 순례의 목적지다. 라오스 사람들은 왕궁 박물관에 있는 신성한 황금 불상 ‘프라방’을 알현하는 일을 생의 과업으로 여긴다. 이 불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도시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14세기, 크메르제국(지금의 캄보디아)의 공주와 결혼한 란쌍 왕국(최초의 라오스 독립국가. 현재의 라오스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라오스는 ‘란쌍’이었다.)의 파웅음 왕이 장인으로부터 이 선물을 받은 뒤 이곳은 씨앙통(황금의 도시)이라는 옛 이름 대신 ‘신성한 황금 불상의 도시’라는 뜻의 루앙프라방으로 불렸다.


나라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황금 불상 프라방도 신비롭지만 이 도시를 휘감는 경건한 기운은 다른 데서 나온다. 탁발하는 승려와 시주하는 라오스 사람.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매일 아침 꾸준히 거행되는 이 신성한 나눔은 여행자에게 루앙프라방을 방문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도착 첫날, 드디어 탁발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설?다. 호텔 컨시어지에 탁발 방법과 장소를 물어가며 의욕적으로 매일 나갈 계획도 세웠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의식은 정확히 5시 무렵 시작된다. (계절에 따라) 해가 안 떠도 칠흑 속에서 거행된다. 구경에서 그치고 싶지 않다면 미리 상인에게 갓 지은 찹쌀밥 ‘카오냐오’가 들어있는 대나무 밥통 ‘팁카오’를 사거나, 머무는 호텔에서 탁발 체험을 신청할 수 있다. 시주하는 이가 지켜야 할 예절은 이렇다. 승려보다 아래에 위치할 것. 눈을 보지 말 것. 손을 청결히 하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바칠 것. 잠이 덜 깬 상태로 그 규칙을 외다 보면 곧 맨발의 행렬이 눈앞에 빠르게 나타난다.

쏟아지는 졸음보다 더 큰 난관은 뜨거운 밥알을 빠르게 한 줌 뭉쳐 집은 뒤 바람처럼 지나가는 승려들의 바구니에 빠짐없이 넣는 일이다. 라오스엔 수십 개의 사원과 1000여 명 이상의 승려가 있고, 이들이 매일 사이좋게 각자의 동네를 돌려면 빠른 속도는 필수다. 노승부터 동자승까지 일렬로 선 무리가 지나가면 남루한 행색의 아이들이 나타난다. 아이들이 그릇이나 양동이를 앞에 두고 시주자 근처에 멀찍이 앉아 있으면 승려들이 그 안에 받은 것을 조금씩 나눈다. 한쪽에 일찌감치 자리잡은 영리한 동네 개들도 운이 좋으면 하루치 식량을 얻어 간다.

일회성 체험에 불과했지만 탁발은 확실히 특별한 경험이다. 무례하게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망원렌즈를 들이대고 잡담으로 소란을 만드는 관광객 틈에서 승려와 라오스 사람들은 오롯한 침묵으로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일과에 집중한다. 가난해도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행위보다 그게 더 감동적이었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온 이 고유한 문화가 시대, 사상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속되고 있는 건 이 한결 같은 성실함과 집중 덕 아닐까? 이런 장면 앞에 있으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좋은 철학서 한 권을 읽는 일만큼이나 의미 있는 찰나였다.

공예의 도시를 탐험하는 법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에서 ‘직조의 수도’로 불린다. 꽝시 폭포만큼이나 유명한 야시장에만 가도 이곳의 수공예 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물론 잘 찾아내야 한다. 값싼 건 대부분 중국과 태국에서 대량생산된 공산품이다). 가짜를 분별하는 눈썰미가 없다면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번화한 대로, 씨사왕웡 거리와 싹까린 거리에 들어선 몇 곳의 상점을 찾으면 된다. 일찍이 루앙프라방의 장인과 손잡은 유럽인, 젊은 라오스 디자이너와 사업가들이 세련된 감각으로 풀어낸 수공예 브랜드와 작업실이 이 길에 꽤 많다. 국제 변호사 출신의 프랑스인 베로니크가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나카(Anhaka)’, 영국 디자이너 헤더 스미스가 흐몽족의 고유한 텍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생활용품점 ‘파사 파(Passa Paa)’ 등이 대표적인 상점이다.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조안나와 라오스 출신 베오마니가 문을 연 ‘옥팝톡(OCK POP TOK)’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큰 텍스타일 브랜드다. 이들은 라오스 전역에 거주하는 500여 명의 여성 장인과 함께 예술 작품 및 생활, 패션 소품을 만든다. 완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있는 쇼룸 외에 직조와 염색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운영한다. 반나절에서 한나절가량의 시간을 들이면 자연의 색을 내는 열매와 나무를 채취하는 과정부터 염색, 베틀 짜기 등을 거쳐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기 작품을 만들어 가져갈 수 있다. 라오스의 전통 음식과 다과를 즐길 수 있는 롯지 카페는 작업 후 시간을 보내기 좋은 장소. 간단한 채소와 고기, 국물 요리로 구성된 ‘직조공의 점심’ 세트로 허기를 채운 뒤 도도히 흐르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일몰을 즐기면 루앙프라방 공예가의 일상을 제법 비슷하게 경험할 수 있다.

숨은 ‘프랑스’를 찾아서

루앙프라방은 주머니가 가난한 청춘들의 배낭 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굳이 길거리 음식과 싸구려 야시장, 게스트 하우스를 전전할 필요는 없다. 좀 더 근사한 여정과 경험을 좇는 가족과 연인, 신혼여행자들도 직항이 드문 이 도시를 즐겨 찾는다. 엄정한 관리로 여전히 청정한 꽝시폭포, 아마존 강 못지않게 장대하고 거친 메콩강과 옛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 남긴 이국적인 흔적은 루앙프라방의 또 다른 매력이다.

‘프랑스풍’이 진하게 섞인 라오스의 콜로니얼 문화는 건축물과 음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라오스 최고의 크로아상집’으로 극찬받는 베이커리 ‘르 바네통(Le Banneton)’은 야시장의 ‘만사천낍 뷔페’와 함께 루앙프라방 여행자가 극찬하는 동네 맛집이다. 프랑스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테리아답게 본토에 가까운 맛을 재현한다.

프랑스 군이 주둔했던 막사는 호텔이 됐다. 번화가의 시작점이자 왕의 대로 중심에 들어선 ‘아바니 플러스 루앙프라방(Avani+ Luang Prabang)’ 얘기다. 건축가 파스칼 트라한은 1914년 지어진 신고전주의 저택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루앙프라방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는 현대적인 공간을 구현했다. 겉은 프랑스지만 공간의 안쪽은 라오스로 채웠다. 지역 목재로 만든 가구와 고산족 장인과 디자이너가 만든 수공예품과 패브릭은 ‘라오스다운 경험’을 원하는 여행자의 욕구를 만족시킨다. 호텔 한쪽에 있는 레스토랑 ‘더 비스트로’에선 루앙프라방의 재료로 만든 퓨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프랑스 교외의 전원주택 같은 공간 안에서 지역 어부가 전통 낚시 방식으로 잡은 민물 생선 요리, 풀 좋고 물 맑은 루앙프라방 근교 들판에서 키운 물소 고기 버거 등을 즐기는 독특한 미식 경험을 놓치지 말 것.

시간이 지워지는 순간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따로 있다. 시내에서 제일 큰 시장에서 문도, 셔터도 없는 미용실 앞을 지날 때의 일이다. 낡은 거울과 식탁 의자 몇 개,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로 추정되는 독특한 머리 모양을 한 사진 몇 장. 그 뒤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 하나.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그 가구에 시선이 멈췄다. ‘미용실에 웬 침대?’ 호기심은 곧 해소됐다. 머리를 자른 여성이 침대로 가 누우니 미용사가 그 아래에 대야를 받치고 미리 받아놓은 물에 머리를 감겼다. 너무 흔해서 한번도 존재감을 인지하지 못한 ‘미용실 자동의자’ 정도의 문명이 이 도시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미용실 원장이 그걸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걸까?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내내 “지금 2019년 맞나?” 같은 반문을 17번쯤 했다. 몸으로 느낀 이 도시의 시제는 “아빠 어렸을 땐 말이야”에 등장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유년기 그 자체였다. 학교에 있어야 마땅할 시간에 강가에서 발가벗고 뛰노는 아이들(가난해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가 많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주차 미터기, 고층 건물이 단 하나도 없는 번화가….

한 해 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나라에서 가장 빛나는 유산을 지닌 고도는 생각보다 더 ‘옛날’ 도시 같았다. 눈으로 맞는 풍경의 시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발전이 더뎌서, 으레 있어야 마땅한 것들-예를 들면 도시인의 안식처, 스타벅스와 맥도날드-이 정말로 없다. 이 ‘뒤처진 속도’ 덕에 매일 시간을 까맣게 잊었다. 일상과 서울이 버거울 때, 낯선 시제에 내 자신을 던지고 싶을 때 루앙프라방을 또 찾을 생각이다. 그 의지 앞에서 두 세 편의 비행기와 버스를 거치는 번거로운 여정, 흔한 편의점 하나 없는 불편한 깡촌의 환경은 별 문제가 안 된다.

루앙프라방=글·사진 류진 여행작가 flyryu@naver.com

여행 정보

꽝시폭포는 탁발 의식과 함께 루앙프라방의 상징으로 손색 없는 볼거리다. 시내에서 뚝뚝이나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미니밴을 타면 약 40~50분 안에 닿는다. 석회암 성분 덕에 청아한 옥빛 물색이 난다. 수영 가능 표지판이 있는 구역에선 물놀이도 할 수 있다. 라오스 최초의 식물원 ‘파 따 드께 보태니컬 가든’은 숲과 정원의 매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시내의 티켓 오피스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면 메콩강을 왕복하는 전용 보트를 타고 갈 수 있다. 오후 5시 안팎에 출발하는 마지막 배편을 타고 나가면 메콩강의 숨막히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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