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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한보 애사(哀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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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원순 기자 ] 에콰도르는 한반도 1.3배 크기의 태평양 연안국이다. 스페인어로 ‘적도(Ecuador)’가 그대로 국명이 됐다. 독특한 해양생태계로 유명한 갈라파고스 제도가 이 나라 영토다. 세계의 흐름과 따로 가는 한국만의 규제행정을 비판할 때 인용하는 그 갈라파고스다. 고원도시 키토가 수도지만, 경제의 중심은 커피 수출항 과야킬로 알려져 있다.

에콰도르 최대 도시 과야킬에서 뒤늦은 부고 한 통이 국내로 전해졌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수의 ‘최후’가 전해진 과정도 굴절 많았던 그의 삶만큼이나 극적이다. 넷째아들 정한근 전 한보 부회장이 해외도피 21년 만에 검거되면서다. 미국으로 가려던 아들 정씨가 경유지 파나마에서 붙잡힌 뒤 아버지가 지난해 작고한 사실을 추적해 온 검찰에 알렸다. 과야킬 부촌의 수영장 있는 저택에서 95세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2007년 재판 도중 신병치료 명목으로 일본으로 빠져나간 뒤 90대에도 이역 땅에서 아들과 유전 사업을 벌였다니, ‘한번 사업가는 영원한 사업가’인가.

한보그룹 흥망사에는 한국 경제개발 역사의 또 다른 면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돌아볼 때 한보 좌초를 빼놓을 수 없다. 재계 14위까지 오른 ‘대마(大馬)’였지만, 제철소 건설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지금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가 그때의 한보철강 공장이다. 당시 기아특수강 삼미특수강의 모(母)기업도 줄줄이 무너졌다. 중후장대 철강산업은 쉽게 손댈 사업이 아니었다.

건설사를 경영하던 정 회장이 제철소를 세운 것은 역술인 때문이라는 뒷얘기도 있다. “당신의 사업 운은 쇠로 흥한다”는 조언을 믿었다는 것이다. 400개 넘는 점포가 다닥다닥 붙은 대치동 은마상가에 그룹 본사를 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젊은 시절 20년 넘게 세무공무원을 지냈던 그가 ‘세금체납액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간 것도 아이러니다. 한때 “내 돈 안 받은 공직자 있으면 나와 보라” “내가 불면 많이 다칠 것”이라며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보 애사(哀史)도 매듭지어졌다. 그가 세운 은마아파트는 재건축으로 재탄생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가 중심에 서서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수서 특혜분양사건’도 역사가 됐다. 한쪽으로는 고도성장기, 다른 쪽으로는 거품기에 부동산과 건설산업으로 떴던 기업인들이 대부분 떠나갔다. 그 뒤를 누가 잇고 있나.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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