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 논설위원
[ 양준영 기자 ]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손꼽히는 부자 나라였다.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돈 벌러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서는데, 엄마가 간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팜파스’로 불리는 드넓은 초원엔 방목하는 소들로 넘쳐났다. 지금도 인구(4500만 명)보다 소가 많아 나라 자체가 거대한 정육점으로 불릴 정도다.
소는 아르헨티나 부의 원천이었다. 1877년 증기선 냉각장치가 발명되면서 아르헨티나의 육류 수출은 크게 늘었고,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13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미 최초의 지하철이 건설될 정도로 황금기를 구가했다. 많은 유럽인이 ‘기회의 땅’ 아르헨티나로 가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다.
아르헨티나의 국운은 여기까지였다. 군사 쿠데타 등을 겪으면서 경제는 추락을 거듭했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가장 큰 원인은 1940~1950년대 집권한 후안 페론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이 씨앗을 뿌린 ‘복지 포퓰리즘’이었다. 페론은 국가 재정은 생각하지 않고 ‘퍼주기식 복지’에 매달렸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해 외국 자본의 이탈을 부채질했다. 그 결과 수십 년간 재정적자에 시달렸고 외환위기가 되풀이됐다.
지난 16일 아르헨티나에서 최악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전력망을 공유하는 이웃나라 우루과이와 파라과이까지 피해를 입었다. 블랙아웃의 원인으로 노후한 전력망, 시스템 오류, 사이버 공격 의혹까지 제기된다. 따지고 보면 전임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낳은 결과로 볼 수 있다.
‘페론주의자’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2003~2015년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전기·가스·수도 등의 요금을 동결하고 재정으로 틀어막았다. 이 때문에 전력 수요는 급증했지만, 설비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정전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취임한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포퓰리즘과의 단절’을 내걸었다. 각종 보조금과 연금을 삭감하는 등 긴축정책을 폈다. 포퓰리즘의 단맛에 길든 국민들은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포퓰리스트는 이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10월 대선을 앞두고 전임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주도하는 야당의 지지율이 더 높다고 한다. 이러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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