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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깜깜이 입찰'에…앉아서 수백억 날린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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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관 시공社, 589억 낮게 쓴 삼성물산 대신 계룡건설 선정
의혹제기·감사원 지적 이어지자 취소…완공 2년 이상 지연
월세만 300억 더 내야할 韓銀, 조달청 상대로 손배訴 검토



[ 고경봉 기자 ]
각국 중앙은행 건물은 그 나라의 통화정책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설립된 지 80년이 넘은 미국 워싱턴DC 에클스빌딩(미 중앙은행(Fed) 본관)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복판에 솟아있는 유럽중앙은행(ECB) 청사는 경제강국의 전통과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 건물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본관을 떠나 서울 태평로 옛 삼성본관에서 월세살이를 한 지 이달로 3년차에 접어들었다. 얼마나 길어질지 기약도 할 수 없다. 한은 통합별관 공사를 맡은 조달청이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법령을 위반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조달청은 2017년 12월 삼성물산 현대건설 계룡건설이 참여한 입찰에서 계룡건설을 낙찰예정자로 선정했다. 계룡건설이 써낸 가격은 공사예정금액인 2829억원을 4억원 초과했다. 2위인 삼성물산보다도 589억원 높았지만 기술력 평가에서 계룡건설이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물산과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와 감사원 감사 등이 이어지면서 조달청은 입찰공고를 취소했다. 시공사 선정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면서 내년 하반기로 예정됐던 한은 통합별관 완공 시기는 적어도 2년 이상 늦춰지게 됐다. 한은은 최소 300억원(월세 13억원)의 임차료를 추가로 내야 할 판이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기약 없는 월세살이를 ‘깜깜이 조달행정’이 낳은 예산 낭비 사례로 보고 있다. 지난달 계룡건설이 낙찰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공사는 더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한은뿐만이 아니다. 조달청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구센터 신축공사, 올림픽스포츠콤플렉스 조성공사 등도 시공사를 선정했다가 최근 취소하면서 건설사들의 줄소송에 휘말렸다. 한은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등은 공사가 차질을 빚자 조달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검토에 들어갔다.


조달청에 맡겼다가 공사 지연 '날벼락'…기약없는 '韓銀 월세살이'

조달청의 공공발주 ‘부실 낙찰 논란’이 줄소송 국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조달청이 한국은행 통합별관 공사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구센터 신축공사, 국민체육진흥공단 올림픽스포츠콤플렉스 조성공사 등을 위탁받아 시행한 낙찰 예정자 선정 과정에서 비리의혹 논란이 불거져 최근 입찰을 모두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이들 공사의 낙찰 예정자인 계룡건설, 동부건설, 현대건설 등은 잇따라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조달청이 승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법적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크다. 공사 차질로 다른 공공기관 역시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은 등은 조달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검토 중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결국 세금 등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한은 통합별관 공사건은 조달청의 ‘퍼주기 낙찰’ 논란이 세금 낭비와 공공기관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은, 조달청에 맡겼다가 논란만 키워

한은은 2015년 안전문제 등으로 서울 남대문로 본관 옆에 있는 1별관을 재건축하고 2별관과 본관은 리모델링하기로 하면서 조달청에 30억원을 주고 일을 위탁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꼬였다. 2017년 12월 낙찰 예정자 선정 당시 계룡건설이 써낸 가격(2831억원)이 공사예정가격(2829억원)을 넘겼는데도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을 제치고 1위를 한 것이다. 2위였던 삼성물산과는 589억원 차이 났다. 가격 부문에서 입찰에 참여한 3개 건설회사 중 꼴찌를 했는데 기술 평가에서 후한 점수를 받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조달청은 이 과정에서 국가계약법령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예정가격 초과 입찰이 가능한지도 확인해보지 않은 채 임의로 입찰했다. ‘입찰 비리가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조달청의 위법한 조달행정 농단이라며 공익감사를 청구했고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입찰이 부적절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조달청은 지난달 10일 입찰 공고를 취소했다. 하지만 이번엔 계룡건설이 반발하며 조달청을 상대로 ‘낙찰예정자 지위 확인 등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계룡건설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본안소송을 통해 법적 공방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한은 통합별관 공사도 하염없이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은, 조달청에 손해배상 검토

한은 측은 “조달청을 믿고 맡겼는데 결과적으로 공사가 장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당초 지난해 초 착공해 내년 하반기 완공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최소 2년 이상 입주가 미뤄지게 됐다. 한은은 서울 태평로 옛 삼성본관 건물의 절반가량인 18개 층을 임차해 사용 중이다. 월 임대료가 13억원에 이른다. 2년간만 더 쓴다고 해도 312억원을 추가로 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조달청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달청이 단순히 예정가격 초과 건설사를 선정했다는 사실보다 기술평가를 왜곡해 특정 건설사에 몰아주기를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은 본관과 별관은 국내 최고 수준의 보안 기능과 전산 기능을 확보해야 하는 데다 통화정책의 상징성이 크다 보니 공공발주 공사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는 조달청에 맡겼다”며 “하지만 조달청의 행보를 보면 전문성과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달청은 이에 대해 “입찰의 공정성, 투명성 시비를 근절하기 위해 예정가격 초과 응찰을 불허하기로 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며 “내부 직원 평가위원을 최소화하고 재취업 퇴직자 이력도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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