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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명저] 사회주의는 '실현불가능한 좋은 이상' 아닌 '거짓 이론'일 뿐…문명은 혁명이 아닌 진화로 발전한다는 '자생적 질서' 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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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치명적 자만》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참과 거짓을 가리는 진위의 문제다.”

“사회를 원하는 대로 계획하고 조율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갖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참과 거짓을 가리는 진위(眞僞)의 문제다. 이상은 좋지만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나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거짓 이론이며, 칼 포퍼(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거짓으로 밝혀진 사이비 과학이론’일 뿐이다.”

인간 사회에서 오래된 ‘잘못된 믿음’이 있다. ‘정부만이 이상사회를 설계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능력을 갖췄다’는 믿음이다. 모든 사람이 풍요를 누리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정부가 개인과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는 이를 ‘치명적 자만’이라고 불렀다. 1988년 출간된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은 하이에크가 마지막으로 쓴 책이다. 사회주의 정책 범람에 맞서 자유주의를 지켜온 그는 이 책을 통해 사회주의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논증했다. 책의 부제를 아예 ‘사회주의의 오류’로 정했다.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시장질서란 인위적이다. 자본가들이 계급적 이익을 위해 시장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잘못 운영되고 있는 이 시장을 정부가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지전능한’ 정부가 사회적 불평등 해소 등 고귀한 목적을 위해 나서는 것이 옳다고 확신한다.” 하이에크는 “사회를 원하는 대로 계획하고 조율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갖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이성은 제한적이며 지식은 분산돼 있어서다.

그는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려운 ‘좋은 이상’”이라는 당대 지식인들의 주장을 배격했다. 원천적으로 잘못된 근거와 토대 위에 세워진 거짓된 이론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모든 것을 알고,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정직하지 못한 선동가의 지적 자만(自慢)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자만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빈곤과 폭정, 그리고 문명의 파괴로 나타났다. 옛 소련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이를 입증했다.

한때 좌파 이론에 심취했다가 하이에크 사상을 접하고 시장경제 옹호자로 변신한 《치명적 자만》 한국어판 역자(譯者)인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고백도 눈에 띈다.

“그때까지 나는 사회주의가 이념적으로 옳지만 현실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믿었다. 사회주의가 도덕적으로는 우월하지만 효율성 면에서 자본주의에 뒤진다고 믿었다.”

하이에크는 《치명적 자만》에서 ‘자생적 질서이론’을 주창했다. 혁명이 아니라 진화를 통해 인류와 문명이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계획과 규제가 없는, 아니면 최소화된, 자유시장 경제만이 번영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인류 문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한 것이지 순간적인 혁명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 자생적 질서와 가치가 인간의 기획이나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역사 과정에서 스스로 생겨났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진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 시장경제는 문명의 자연스런 진화의 결과다. 시장경제는 성장과 번영의 기반이 되는 방대한 지식을 창출하고 유통하는 가장 효율적인 체계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를 반대하는 것은 문명의 진화를 거스르는 것이며 문명의 퇴보를 낳는다.”

"시장경제 반대는 문명 거스르는 것"

그는 역사적으로 시장을 중시한 문명권은 발전했고, 그렇지 않은 문명권은 퇴보했다고 설명했다. “사유재산의 보호를 중요한 목적으로 삼은 정부가 존재하지 않은 곳에서는 어떤 선진문명도 영속하지 못했다.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중국이 유럽에 뒤진 것도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 보호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입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통제권을 갖고 계획을 세워 운영하면 더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富)의 불평등도 정부가 세금 등으로 조정하고, 일자리도 재정을 풀어서 만들고, 물가도 통화정책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치명적 자만’의 결과는 원래의 ‘선한 의도’와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이에크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사회주의 위협이 여전하다고 경고했다.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도 사회주의 정책들이 넘쳐난다. 사회주의에 대한 문제는 사회주의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주의가 번성하고 시장질서가 파괴되면 오늘날 우리가 쌓아올린 문명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 수백만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 및 재산권과 같은 인류 문명의 기본원리를 파괴하려는 사회주의에 저항해야 한다. 그것이 지식인의 의무다.”

김태철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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