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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脫원전·소주성 '코드 연구'에 질렸다"…짐싸는 국책硏 연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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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원 '정책 두뇌'들이 떠난다

작년 187명 퇴직…28%↑
정부 입맛 맞는 연구 압박
'낙하산 원장'들 지나친 간섭
국가정책 연구기반 '흔들'



[ 성수영 기자 ]
국가 정책의 산실(産室)인 국책연구기관 연구인력들이 민간으로 떠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권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라는 압력이 심해진 데다 2012년부터 연구기관들이 세종시 등 지방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거주 여건이 나빠진 결과란 해석이 나온다.

4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책연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경사연 소속 26개 기관 정규직 연구인력 퇴사자는 187명으로 1년 전(134명)에 비해 28.3% 증가했다. 올 들어 지난 4월 말까지 퇴사자는 77명에 달했다. 2015년 145명, 2016년 126명, 2017년 134명 등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부터 정책 브레인의 이탈이 급증세를 보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경제 부문 2위 싱크탱크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정규직 연구인력 17명이 이탈했다. 퇴사자가 한 해 5명 수준이던 것에 비하면 ‘탈출 러시’다. 확장재정을 선호하는 김유찬 원장이 지난해 4월 부임한 뒤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연구위원들과 갈등을 빚은 것이 주된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연에선 올 들어서도 7명이 떠났다. 원전 분야를 연구하던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지난해 2월 지방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코드를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되고 고급 두뇌의 이탈이 지속되면 국가 정책을 뒷받침하는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전직 국책연구기관장은 “연구인력들이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등 정부 정책을 긍정하는 연구를 내놓으라는 압력을 피해 탈출하고 있다”며 “연구 독립성을 침해하는 정부와 이에 호응하는 ‘폴리리서처(poli-researcher)’ 연구기관장들의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부원장급 조직이었던 북한인권연구센터를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는 인도협력연구실과 합쳐 축소 개편했다. 지난해 4월 ‘강경 햇볕론자’로 평가되는 김연철 통일연구원장(현 통일부 장관) 취임 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통일연구원 관계자는 “연구 축소 등으로 좌절한 연구자가 많았다”고 했다. 이를 반영하듯 2015년과 2016년 각각 두 명이던 정규직 연구인력 퇴사자 수는 지난해 여섯 명으로 늘었다.

2016년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원전산업에서 36조2000억원의 생산과 연간 고용 9만2000명이 늘어난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A연구위원은 지난해 2월 한 지방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2017년 7월 정부의 탈(脫)원전 선언 이후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원전의 편익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잇따라 펴내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원들이 탈원전 정책으로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코드 연구, 더 이상 못 하겠다”

4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6개 국책연구기관에 따르면 국책연구기관들의 정규직 연구인력 퇴사자 수는 2017년 134명에서 2018년 187명으로 늘었다. 올 들어 4월 말까지 퇴사자도 77명에 달했다. 국책연구기관을 떠나는 정책브레인이 급증한 건 문재인 정부 들어 연구 방향에 대한 간섭이 극심해진 영향이 컸다. 정부 출범 직후 국책연구기관장들이 대거 교체됐다. 빈자리는 대선 캠프 때부터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등을 설계했던 ‘비주류’ 학자들이 채웠다. 경제 관련 연구기관에는 ‘학현학파’(학현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배운 분배 중시 진보학자 모임) 출신이, 에너지 기관에는 탈원전주의자가 선임되는 식이다. 한 전직 국책연구기관장은 “역대 정부도 국책연구기관장 자리를 논공행상의 대상으로 분류했지만 이번 정부는 그게 유난히 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비주류 기관장’과 연구위원들 간의 갈등이 격화됐다. 정부 정책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연구는 가급적 차단하고, 정책 방향과 부합하는 연구는 인력 및 예산 확대를 통해 밀어주는 식이다. 보수 성향의 연구결과를 발표해온 한 국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1년에 10개 수준이던 정부 연구용역이 최근 2년간 1~2개로 급감했다”며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 용역결과가 나올 게 뻔하니 아예 용역을 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떠나거나, 싸우거나

연구인력 입장에서는 이 같은 간섭에 저항하기 쉽지 않다. 최근 지방대로 자리를 옮긴 한 국책연구기관 출신 교수는 “관련 학계가 좁아 이의를 제기하면 ‘정치 하려고 그런다’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라며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었지만 정권에 흔들리지 않고 연구하고 싶어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대표적 사례다. 조세연 관계자는 “확장적 재정을 선호하는 김유찬 원장이 부임한 뒤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연구위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매년 5명을 밑돌던 조세연 정규직 연구인력 퇴사자 수가 지난해 17명, 올해 1~4월 7명에 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 원장은 독일 유학파로 학계에서는 비주류에 속한다. 그는 홍익대 교수 시절인 2015년 발표한 글에서 “소득주도성장이 (한국과 같은) 개방경제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고 임금 인상과 법인세 증세도 기업 경쟁력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떠나는 대신 ‘투쟁’을 택한 학자들도 등장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2017년 새 원장 취임 직후부터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부정적 연구에 간섭하는 등 연구 주제 관여가 심해졌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이 힘들어 죽겠다는 마당에 현실과 동떨어진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연구위원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지방 이전도 원인

2013년부터 대부분의 국책연구기관이 세종 울산 등 지방으로 이전한 것도 연구인력 탈출을 가속화한 요인이다. 지방에 있는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연구기관이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지방에 있는 대학으로 옮기는 인력이 거의 없었지만 지방 이전 뒤에는 ‘어차피 똑같은 지방’이란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선임연구위원을 제외한 이들의 연봉은 6000만~7000만원 수준으로 대학 및 민간 연구소보다 적어 붙잡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한 전직 국책연구원장은 “연구의 연속성이 단절되고 국책연구기관 인력의 평균적인 질이 낮아지면 국가 경쟁력 저하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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