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비밀녹음
자신이 대화 당사자로 참여
정당한 사유 있다면 '합법'
법률 분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증거는 무엇일까? 계약서나 각서 등 서면에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게 등장하는 증거가 바로 녹음이다. 휴대폰이나 녹음기 버튼 하나면 손쉽게 증거 수집이 가능하고 당사자, 증인의 목소리를 통해 진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녹음은 재판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증거로 다뤄지곤 한다.
녹음 증거가 대화 당사자 모두의 동의를 얻은 상태에서 얻어진 것이라면 누구도 그 녹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증거를 얻기 위한 의도로 비밀스럽게 이뤄지는 녹음의 특성상 상대방 동의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때문에 최근 재판 과정에서 녹음의 증거능력을 다투거나 녹음행위에 대한 민·형사책임을 묻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비밀 녹음은 과연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일까?
먼저 비밀 녹음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의 녹음을 금지하면서 이에 위반하는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자신이 대화자 중 한 사람이어서 타인 간 대화로 볼 수 없는 때는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순수하게 다른 사람들끼리 하는 대화를 녹음한다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아래 A, B씨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A씨는 아내의 불륜 증거를 잡기 위해 녹음기를 집안에 숨겨 아내가 불륜 상대방과 대화하는 내용을 여러 차례 녹음했는데 되려 아내로부터 불법 녹음을 이유로 고소당하기에 이르렀다. A씨는 자신이 대화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다른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이므로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것에 해당한다. 결국 A씨는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B씨는 택시 운전사로 택시에 승차한 승객과의 대화를 인터넷 방송을 통해 중계하는 방식으로 다수에게 공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두 명의 승객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택시 운전사와 함께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승객은 운전사를 고소했지만 B씨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B씨는 승객과의 대화에서 직접 대화 당사자로서 참여했기 때문에 이를 두고 타인 간 대화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B씨의 경우처럼 형사처벌을 면했다 하더라도 비밀 녹음은 민사상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필요한 범위 내에서 불가피하게 행해진 비밀 녹음이라면 민사 책임 역시 발생하지 않지만 정당한 목적이 없거나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를 벗어난 녹음은 민사상의 불법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 우리 법원이 비밀 녹음은 음성권 또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민사상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또는 중대한 범죄를 방어하기 위해 비밀 녹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분명히 있다. 모든 비밀 녹음에 민·형사상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단, 비밀 녹음으로 되려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타인 간 대화가 아니라 자신이 대화 당사자로 참여해야 하고, 정당한 목적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녹음은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박현진 < 미래에셋대우 VIP컨설팅팀 변호사 hyunjin.park@miraeasse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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