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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 & 이대리] '퇴사 카드' 주저않는 90년대생 신입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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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까지 야근했다" 선배 말 듣고
입사 하루 만에 퇴사

워라밸·개인주의 중시한다지만
5년차 李대리도 '황당'



[ 하헌형 기자 ]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이 대리(33)의 한 신입사원 후배는 얼마 전 입사 하루 만에 직장을 관뒀다. 신입사원이 첫 출근하기 전날 밤 이 대리는 급한 업무 때문에 잠도 못 자고 회사에서 야근했다. 이튿날 출근한 신입사원은 야근을 마치고 간이침대에 누워 숙면을 취하고 있는 이 대리를 발견했다.

“어디 안 좋으세요”라고 묻는 신입사원에게 이 대리는 “주말 내내 밤새워 일해서요”라고 답했다. 다음날 신입사원은 “저랑 안 맞는 회사인 것 같습니다”란 문자메시지를 그에게 보낸 뒤 출근하지 않았다. “요즘 신입사원들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쉽게 퇴사를 결정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1990년대생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기성세대가 조성해 놓은 기업 조직문화에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X세대’ 같은 과거 신세대는 초기엔 기성 문화에 반발하다가 결국 동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990년대생은 스스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퇴사도 서슴지 않는다. ‘튀는’ 1990년대생 후배 직장인과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고민하는 선배 직장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1990년대생에게 워라밸은 최우선 가치

1990년대생 새내기 직장인에게 워라밸은 최우선 가치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정규 업무 시간이 끝나면 휴식이나 여가 생활을 즐기려는 이들과 회식 같은 직장 내 친목 모임을 중시하는 기성세대는 종종 부딪힌다. 경기도의 한 전자부품 회사에 다니는 임 과장(33)은 얼마 전 부서장의 넋두리를 들었다. 부서장은 부원들과 친목을 다지고 싶은 마음에 올 들어 수차례 부서 회식을 제안했다. 그런데 회식에 참석했던 일부 젊은 부원이 “왜 부서장과 저녁까지 같이 먹어야 하느냐. 업무만 연장되는 거 같아 싫다”고 주변에 불평을 털어놓은 사실을 부서장이 알게 됐다. 임 과장은 “부서장이 ‘다시는 후배에게 밥을 사지 않겠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배신감이 든 건 처음’이라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한 공사에 취직한 이 사원(28)은 입사 후 ‘예기치 못한’ 릴레이 야근에 당황했다. 애초 워라밸을 기대해 공사에 들어갔지만 실상은 밤샘 근무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요즘 야근 많이 했는데 오늘은 먼저 집에 들어가”라는 한 상사의 말을 듣고 바로 퇴근했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가란다고 가는, 눈치 없는 막내’로 찍힌 것이다. 그 다음날부터 이 사원에겐 “너는 오늘도 빨리 가야지”라는 상사들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가지 말라고 했으면 안 가고 남아서 일했을 텐데, 가라고 해 놓고 나중에 뭐라 하는 문화는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눈칫밥 좀 더 먹다 보면 적응할 수 있을까요?”

생활용품기업에 다니는 이 과장(39)은 얼마 전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 대여섯 명의 항의 방문을 받았다. 이들은 “올가을 회사 워크숍 때는 신입사원 장기자랑을 하지 말자”고 요구했다. “퇴근 후 모여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건 불필요한 업무의 연장”이라고도 했다. 신입사원들의 ‘당돌한’ 요구를 수용한 이 과장은 “단체로 부서장을 찾아와 이런 주장을 펼치는 건 내가 젊었을 땐 꿈도 꾸지 못한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주저 없이 ‘퇴사’ 카드도 꺼내는 1990년대생

1990년대생 직장인 사이에서 ‘평생직장’은 무의미한 단어가 됐다. 근무 기간과 관계없이 직장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주저 없이 그만두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인터넷쇼핑몰 업체에 근무하는 오 사원(25)은 “평생 다닐 직장이니 힘든 일이 있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부서장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평생직장이란 개념 자체가 이젠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오 사원은 “5년 뒤, 10년 뒤 이 업계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데, 이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부서장이 참석하라는 회식이나 주말 등산 모임에도 웬만해선 나가지 않는다. “일만 잘하면 되지, 상사 비위 맞추려고 사적인 모임까지 나갈 필요는 없잖아요. 부서장이 제게 그걸 강요했다면 바로 퇴사했을 거예요.”

게임회사에 다니는 유 팀장(38)은 지난달 돌연 사표를 낸 한 팀원을 보고 허탈해졌다. “업무를 이렇게밖에 못하느냐”고 한번 호통을 쳤는데, 그 이튿날 그 팀원은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이직을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후배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중에 들으니 그 후배는 직장을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계약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더라”며 씁쓸해했다.

1990년대생 열공하는 선배 직장인들

사내 세대 간 갈등이 자주 빚어지자 1990년대생 후배 직장인을 이해하기 위해 고심하는 선배 직장인도 늘고 있다. 한 공공기관 부서장은 얼마 전 팀장급 직원들에게 1990년대생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분석한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를 나눠 줬다. 1990년대생 젊은 직원을 이해해야 사내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책을 읽어본 김 과장(39)은 “회사에선 자아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젊은 직원들이 선뜻 이해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우리 세대와 어떻게 다른지는 알게 됐다”고 했다.

1990년대생 후배와 일하는 직장인 중에는 ‘꼰대 노이로제(신경쇠약증)’를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다. 소셜미디어 업체에서 근무하는 변 과장(40)은 최근 1990년대생 신입사원과 외근을 갔다가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조금 일찍 회사로 복귀하려 했다. 신입사원은 “점심시간도 근로자의 정당한 휴식 시간이니 혼자서 남은 시간을 보내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변 과장은 그를 데리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는 “신입사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는데 ‘내가 너무 고집만 부린 게 아닌가’ 해서 아차 싶었다”며 “그 일이 있은 뒤론 꼰대라 불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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