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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경쟁촉진자' 평가 있지만 기존 업체와 마찰도
[ 안재광 기자 ] 배달·배송 시장만 놓고 보면 한국 소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택배는 하루 만에 온다. 새벽에 상품을 가져다주는 곳도 있다. 짜장면, 치킨뿐만 아니라 동네 ‘맛집’ 음식까지 배달된다. 이런 서비스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의 결과물이다. 특히 쿠팡은 ‘촉진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쿠팡은 기존의 배송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배송 회사가 됐다. 택배를 시작으로 정기배송, 새벽배송 등으로 확장했다. 지금은 음식 배달까지 나서고 있다. 쿠팡이 판을 흔들고 있는 이 시장의 규모는 약 10조원에 달한다.
택배시장까지 진출 시동
“우리는 택배업을 하려는 게 아니다.” 쿠팡은 2014년 자체 배송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CJ대한통운 등 택배사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언젠가 택배사업을 할 잠재적 경쟁자로 봤다. 법원에 소송까지 내며 로켓배송을 막으려 했다. 이 소송에서 쿠팡이 이겼다. 로켓배송은 쿠팡의 상징이 됐다.
택배회사들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는 전국 60여 곳에 이른다. 배송 전담 직원(쿠팡맨)은 4000명을 넘었다. 파트타임으로 쿠팡 배송을 해주는 ‘쿠팡 플렉스’ 인원만 하루 4000명 이상이다. 작년 택배 면허를 가진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까지 세웠다. 웬만한 택배회사의 배송 인프라를 능가한다. 유통업계에선 쿠팡이 조만간 ‘남의 물건’도 배송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존, 알리바바가 한국에 진출하면 쿠팡의 물류망을 쓸 것”이란 말도 나온다.
마침 택배 관련 ‘규제’도 풀렸다. 택배업에 한해 증차를 허용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최근 시행됐다. 그동안 택배회사들이 줄곧 정부에 요구해온 사안이다. 급격히 커지고 있는 온라인 배송 시장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정기·새벽배송 시장도 장악
쿠팡은 2016년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가격 전쟁을 벌였다. 생수, 기저귀, 물티슈 등을 경쟁적으로 싸게 판매했다. 유통 거인과 벤처기업의 가격 전쟁처럼 보였지만 내용은 정기배송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었다. 생활필수품은 늘 필요한 제품이고, 한 번 구매하면 같은 곳에서 사게 된다. 승기를 잡으면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정기배송 전쟁에 가까웠다.
이 싸움도 결국 쿠팡이 이겼다. 기저귀만 놓고 봐도 쿠팡이 이마트를 누르고 국내 유통사 중 가장 많이 판매한다. ‘바잉파워’가 이마트를 능가했다. 물티슈, 생수 등 품목도 쿠팡이 국내 최대 판매처가 됐다. 쿠팡은 이런 생필품을 정기배송을 통해 더 많이 판매한다. 생수가 대표적이다. 식품 분야에서 쿠팡 내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이 회사의 자체상표(PB) ‘탐사수’다. 삼다수 아이시스 백산수 등 생수 상위 브랜드를 쿠팡 내에서 모두 제쳤다.
배송은 국내 생수시장을 키우고 있다. 상당수 소비자는 더 이상 마트에서 물을 사서 들고 오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배송을 받는다. 작년 생수 시장 규모는 1조2542억원에 달했다. 쿠팡은 작년 10월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마켓컬리 헬로네이처뿐 아니라 이마트 GS리테일 등 대기업까지 새벽배송에 나설 때였다. 쿠팡은 단숨에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쿠팡이 현재 처리하는 하루 새벽배송 주문 건수는 약 3만 건이다. 기존 1위 마켓컬리를 제쳤다. 새벽배송의 품목 면에서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다. 가정간편식(HMR), 신선식품, 가공식품뿐만 아니라 장난감, 학용품 등 약 200만 개 품목을 새벽에 보내준다. 업계에선 올해 국내 새벽배송 시장 규모가 작년(약 4000억원) 대비 두 배 이상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연내 1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분석도 있다.
‘배달의민족’이 장악한 음식배달에도 도전장
요즘 가장 뜨거운 배달 전쟁터는 음식 부문이다. 쿠팡은 음식 배달 앱(응용프로그램) ‘쿠팡이츠’ 시범서비스를 지난달 시작했다. 상대는 이 시장 1위인 배달의민족이다. 배달의민족 측은 “쿠팡이 배달의민족 매출 상위 식당 리스트를 불법적으로 확보해 접근한 뒤 기존 계약 해지를 부추겼다”고 주장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쿠팡이 사업을 본격화하면 두 회사 간 경쟁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쿠팡은 빠르게 물건을 가져다주는 노하우가 있어서다. 쿠팡맨, 쿠팡플렉스는 스마트폰 전용 앱만 켜면 최적의 경로로 다니는 게 가능하다. 처음 배송하는 사람도 이 앱만 켜면 전문가가 된다. 이를 쿠팡이츠 라이더에 적용하면 시장 장악은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 쿠팡의 배달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NIE 포인트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이 소비자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생각해 보자. 쿠팡이 배송, 배달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는 게 왜 논란이 되는지 토론해보자. 쿠팡의 신시장 진출로 혜택을 보거나 피해를 보는 쪽은 누구일지 논의해보자.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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