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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경영인·화가, 이젠 미술관장…인생 4막 시동 건 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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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대 인근 1만㎡ 부지에
100억 들여 여주미술관 개관
전시장과 카페 등으로 꾸며



[ 김경갑 기자 ] 제약업계 최고령 최고경영자(CEO)인 박해룡 고려제약 회장(84)은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한 뒤 종근당에서 25년가량 근무하다 1982년 회사를 창업했다. 회사 경영이 점차 호전되면서 경제력도 갖추고 행복한 가족의 꿈도 이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미술에 대한 꿈이었다. 결국 2005년 회사 경영을 아들 박상훈 사장에게 넘겨주고 붓을 들었다. 잊히지 말아야 할 땅과 사람의 기억, 자취를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화가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며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한 그는 2013년부터 재능과 열정을 사회적 가치로 환원하는 일을 고민했다.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이 미술관 건립이었다.


월급쟁이, 경영인, 화가로 살아온 박 회장이 결국 큰일을 해냈다. 지난달 28일 경기 여주시에 ‘여주미술관’을 공식 개관하고 미술관장으로 4모작 인생을 시작했다. 여주대 인근 1만㎡ 부지에 들어선 미술관은 지상 1층 건물 두 동과 2층 건물 한 동, 연면적 1000㎡ 규모다. 박 회장은 이번 미술관 건립에 총사업비 100억원을 투입했다. 건립 예산으로 그동안 모은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었다. 미술관은 소장 작품에 최적화한 상설 전시관, 특별 전시관, 조각 공원, 어린이 미술 교실, 문화예술 세미나실, 카페 등으로 꾸몄다.

2일 여주미술관에서 만난 박 회장은 “그동안 기업인과 화가로 대중과 만났다면 이제는 예술경영인으로서 화가, 미술애호가들과 만나겠다”며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이자 쉼과 힐링의 공간으로 꾸며 국제적인 미술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팍팍하게 돌아가다 보니 사람들은 무엇보다 따뜻한 감성과 힐링, 작은 행복을 원하는 것 같아요. 난해한 현대미술의 가치를 좇기보다 작은 행복이라도 성취할 수 있도록 미술관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자기 만족에서 시작한 ‘자존감의 끝판왕’ 사업이지만 결국 사회공헌 소명감이 없으면 실현하기 힘들다는 생각도 털어놨다.

박 회장은 특히 “국내 미술시장의 성장동력인 작가 육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술품이 일상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드는 요즘 작품과 상품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경향의 ‘아트 라이프’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기존 미술관과는 다른 젊은 작가 육성을 지향하면서 시민 눈높이에 맞춘 개성 넘치는 작품을 전시해 신선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처럼 젊은 화가들을 후원하면서 국제적인 아티스트를 키우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박 회장에게 여주미술관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그는 “미술관 운영은 화가의 그림 같다”라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전시를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한국 사람들은 늘 새로운 전시를 원해요.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는 건 항상 화가들이 붓 들고 세상과 싸우듯 고통이 따르죠. 게다가 미술관과 귀중한 작품들을 유지하려면 늘 걱정을 달고 살아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전시를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기운이 저에게도 전달되니까요.”

그는 미술관장으로서 목표가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미술품을 보여줄 계획이다. 박 회장은 이를 위해 무료로 전시장을 개방했다. 그는 “대중이 미술관 방문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 시도했다”며 “예술이 사람들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작지만 조약돌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전시 기획 욕심도 냈다. “미술관을 문화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초심을 살렸다. 개관전은 박 회장이 직접 기획했다. 앙드레 브라질리에, 에르베 로왈리에 등 프랑스 작가 12명의 작품과 박 회장이 최근 열정을 두고 쏟아낸 회화 작품들을 걸었다. 전시회 제목은 ‘프랑스 예술가들이 누리는 표현의 환희, 박해룡의 삶에 물들이기’로 붙였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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