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오프라인
경험 마케팅으로 돌파
[ 심성미 기자 ] -2.9% 대 14.1%.
지난 4월 현재 국내 주요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채널 간 극명히 엇갈리는 성적표(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다.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를 통한 쇼핑 트렌드가 당일 배송시스템, 간편결제(핀테크)와 결합하면서 그야말로 온라인 유통의 전성시대다. 반면 오프라인 매장 성장세는 매년 뒷걸음질치는 신세다.
오프라인 매장이 반격에 나섰다. 오감(五感)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오프라인만의 강점을 극대화하면서 문화·체험 등 복합전시공간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브랜드 콘셉트와 정체성을 알려 고객 로열티를 강화시키는 것은 부수적 효과다.
온라인이 줄 수 없는 ‘경험’ 제공
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비 시장에서 주요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69.6%에서 지난해 62.1%로 줄어들었다. 성장률을 따져보면 ‘전통 소매점의 위기’ 수준이다. 2016년 4.5%의 성장률을 기록한 오프라인 시장은 지난해 1.9% 성장에 그쳤다. 올 들어선 지난 2월과 4월 각각 7.1%, 2.9% 매출이 감소했다.
오프라인 매장의 대표 격인 롯데와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3사의 총매출은 올 1분기 1조67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했다. 주요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지난해 15.9%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생존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이 꺼내든 카드는 ‘온라인 쇼핑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차별화된 경험’이다. 매트리스 업체 시몬스가 지난해 9월 경기 이천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시몬스테라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100여 년 전 쓰이던 침대를 전시하는 박물관,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데 도움을 주는 각종 농작물과 식물을 재배하는 공원, 수면 습관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매트리스를 추천받는 체험 공간,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된 라운지 등으로 채워졌다.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꾸민 이곳은 개장 8개월 만에 방문객 6만 명을 돌파했다. 이천 지역 맘카페에선 ‘주말 방문 리스트’에 오른 대표적 명소로 손꼽힌다.
생활용품 기업 쿠첸은 최근 삼성점 성자점 서래마을점 등에 ‘쿠첸 체험센터’를 열었다. 전문 셰프와 함께 쿠첸의 인덕션 밥솥 등을 사용해 다양한 요리를 배울 수 있다. 쌀 씻는 법부터 밥솥 관리법까지 배우고 다양한 밥솥으로 지은 밥맛을 비교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스포츠 매장 안의 체험 공간은 당연시되고 있는 추세다. 요가복업체 룰루레몬은 국내 5개 전 매장에서 무료 요가·필라테스·러닝 강좌를 운영 중이다.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참가할 수 있다. 운동복을 입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제공해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매장에 대한 친밀감을 쌓도록 하기 위해서다.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은 매장 내 운동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운동복 편집숍 ‘피트니스 스퀘어’를 웬만한 대형 매장 2개 규모(363㎡)로 세웠다. 공간을 잘게 쪼개 최대한 많은 브랜드 제품을 진열하던 옛날 영업방식을 과감히 탈피한 것이다.
“브랜드 콘셉트를 정교하게 전달하라”
최근 오프라인 매장들은 단순한 제품 진열을 넘어 브랜드 콘셉트와 정체성을 전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창업 5년 만에 매출 1800억원을 달성한 선글라스업체 젠틀몬스터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공간’이다. 젠틀몬스터의 인테리어 철학은 ‘브랜드 이미지를 담아 젊은 소비자들이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핫플레이스를 만들자’는 것. 50년 된 목욕탕을 쇼룸으로 개조한 북촌점이 대표적이다. 그대로 보존된 사우나실이나 욕탕 등 시설 위에 선글라스가 놓여 있다. 실제 배(船)를 인테리어용으로 들여놓거나, 매장 인테리어를 1년에 수십 번씩 바꾸기도 했다. ‘예측 불가능함’은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소비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공간에 대한 팬’이 생기면서 사진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는 젠틀몬스터쇼룸을 태그한 콘텐츠가 1만 개 가까이 올라왔다.
지난해 3월 서울 청담동에서 문을 연 ‘카페 드 바디프랜드 청담’은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매장이다.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민 매장에서 고급 요리를 즐기며 안마의자를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음식은 호텔 출신 셰프가 엄선된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해 요리한다.
지난해 4월 동서식품이 서울 이태원에 개장한 카페 ‘맥심 플랜트’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커피 교육을 받거나, 24가지 블렌딩 커피 중 개인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추천받을 수 있다. 동서식품 측은 “50여 년 간 수십만 톤의 원두를 다뤄온 맥심만의 노하우가 담긴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고급 커피 시장이 커지면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엄밀히 말하면 오프라인 매장이 망하는 게 아니라 옛날 방식의 매장이 망하고 있는 것”이라며 “신기술을 입히거나 융합을 시도하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등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다면 얼마든지 설 자리는 있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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