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율법학자 “달러 비축은 죄, 알라신의 저주받을 것”
일부 국민 “달러 매입은 투기 아니라 자산 보호 조치…권리 존중 필요”
파키스탄의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미국 달러를 매수해 쌓아두는 것이 중대한 죄라는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에 따른 명령)를 선언했다.
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유력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최근 잇따라 이같은 율법 해석을 내놨다. 이슬람 수니파 무슬림성직자 연합인 파키스탄 울레마 협의회의 마울라나 타히르 아쉬라피 소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달러를 비축하는 일이 혼란을 야기하므로 달러를 쌓아둬서는 안된다는 파트와를 내렸다”며 “파키스탄이 오늘날 겪고 있는 위기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사람들이 불필요한 달러 구매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의 유명 성직자인 무함마드 타키 우스마니 전(前) 파키스탄 샤리아(이슬람율법) 법관도 최근 비슷한 해석을 내놨다. 그는 트위터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이득을 볼 요량으로 달러를 사들이고 비축하는 행위는 중대한 죄”라며 “이는 또한 현재 경제 상황에서 국가에 대한 불충”이라고 썼다. 그는 “무함마드 언행록을 볼 때 미 달러를 비축해두는 이들은 알라신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키스탄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프로그램 돌입을 앞두고 국민 일부가 미국 달러 사재기에 나섰다. 파키스탄 루피화 가치가 날이 갈수록 떨어져서다. 파키스탄은 IMF로부터 39개월간 60억 달러(약 7조980억원) 규모 구제금융을 받을 예정이다.
파키스탄에서 달러 매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지만 실제 시장엔 별 영향력이 없는 분위기다. 한 증권계 관계자는 FT에 “달러 비축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강하지만 효과는 별로 없다”며 “이는 최근 파키스탄 루피에 대한 달러 가격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달러당 파키스탄 루피 환율은 지난 1월 초 139.85에서 29일 오전 기준 151.5로 8.3% 뛰었다. IMF 구제금융 논의가 본격 마무리된 5월 중순부터 상승폭이 가파르다. 이날 파키스탄 루피 대비 달러 가치는 지난 16일(141.625)에 비해 6.9% 뛰었다.
이번 파트와를 놓고도 국민간 이견이 분분하다. 일부 파키스탄 트위터 이용자들은 “달러를 보이콧하자. 파키스탄 경제를 도와야한다”며 파트와에 동의하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반면 반대 목소리도 높다. 종교계가 이슬람율법을 근거로 그간 정부의 정책 실패 결과를 민간에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달러를 사들이는 것은 투기 욕심에서가 아니라 힘들게 번 자산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라며 “자기 자산을 지킬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썼다. 다른 이용자는 “진짜 문제는 국민들이 달러를 사들이는게 아니라 정부가 시장에 늦장 대응을 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각자 경제적인 선택을 할 권리를 존중하라”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은 작년 대비 물가가 8% 이상 뛰고 루피화 가치는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IMF에 따르면 파키스탄 외환보유고는 2개월간 수입 대금을 간신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압둘 하피즈 샤이크 파키스탄 재무장관은 지난 12일 IMF 구제금융 합의안에 대해 소개하며 “이번 IMF 구제금융 이후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등으로부터도 3년간 20∼30억달러를 더 빌릴 계획”이라며 “파키스탄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심도 높은 경제 구조 개혁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코너는 중동과 중동 인근 인도, 파키스탄 등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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