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슈퍼히어로 영화 잇단 개봉
'더 보이', 초능력 소년이 세상 파괴
'다크…', 악당으로 변한 엑스맨
[ 유재혁 기자 ] 할리우드 ‘안티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잇따라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슈퍼히어로가 지구와 도시의 수호신이 아니라 인간 세상을 파괴하는 악당으로 그려지는 작품들이다. 지난 23일 외계에서 온 초인적 존재가 ‘절대악’으로 자라나는 공포물 ‘더보이’가 개봉한 데 이어 영웅에서 빌런(악당)으로 변한 진 그레이를 다룬 ‘엑스맨:다크 피닉스’가 다음달 5일 선보인다. 지난해 선악을 한몸에 지녔던 ‘베놈’부터 시작한 안티 슈퍼히어로물은 주류문화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비주류문화를 탐닉하는 ‘힙스터(hipster) 문화’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긍정과 부정의 감상 혼재
‘더 보이’는 영웅의 아이콘인 슈퍼맨의 기원을 비틀어 초인적인 존재가 인류의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영화는 외계에서 온 소년 브랜든이 사악한 존재로 자라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브랜든은 강철 같은 신체와 강력한 힘, 초고속 비행 능력을 겸비해 ‘리틀 슈퍼맨’을 연상시킨다. 어린 소년이 간교한 거짓말로 사악한 정체를 숨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슈퍼히어로 무비의 전형성을 완전히 깨는 이야기다.
관객들은 상반된 소감을 쏟아냈다.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이건 아닌데…” “인류의 재앙인가, 관객의 재앙인가” 등 부정적인 시각과 “딱 내 취향이다. 색다르다” “친구일 것만 같았던 슈퍼히어로가 잔인한 악당이 되니 더 무섭다” 등 긍정적인 평가들이 뒤섞여 있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최강의 적 ‘다크 피닉스’로 변한 진 그레이와 모든 것을 걸고 맞서야 하는 엑스맨들의 이야기다. 강력한 염력을 지닌 그레이가 자제심을 잃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레이를 연기한 배우 소피 터너는 지난 27일 방한 기자회견에서 “그레이는 다크 피닉스가 돼가면서 몇 초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며 “답답함과 분노 등 감정 연기를 위해 정신질환 관련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反영웅’ 캐릭터 수요 증가
안티 슈퍼히어로의 선두주자는 지난해 10월 국내 개봉해 388만 관객을 동원한 ‘베놈’이다. 정의로운 기자 에디 블록이 외계 생물체 ‘심비오트’의 숙주가 된 뒤 마블 최초의 빌런 히어로 ‘베놈’으로 거듭났다. 정의와 선한 의지의 상징인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베놈은 선악의 양면성을 지녔다. ‘반(反)영웅’ 캐릭터인 안티 슈퍼히어로는 순수한 정의감이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심에 의해 움직인다. 그 점이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져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는 주류문화와 거리를 두면서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추구하는 힙스터 문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힙스터 문화는 취향을 중시하는 문화소비자들이 개성적인 최신 비주류문화를 탐닉하는 현상을 말한다. 슈퍼히어로들이 주류문화가 되면서 식상함을 느끼는 관객이 늘자 B급 정서의 반영웅 캐릭터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미국 만화 역사에서도 슈퍼히어로가 대거 쏟아진 뒤 안티 슈퍼히어로가 많이 등장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안티 슈퍼히어로물은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는 비주류문화”라며 “이 같은 대중문화계의 힙스터 문화 현상이 갈수록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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