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英 원자력산업협회장
중국, 日의 수주 공식 따라해
브래드웰에 중국형 원전 준비중
[ 정인설 기자 ] 티머시 스톤 영국 원자력산업협회장(사진)은 “한국은 영국에서 원전을 건설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한국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중국이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 보수당 정부에서 7년간 에너지 정책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스톤 회장은 최근 런던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원전 사업을 따낼 때 보여준 용감함과 적극성, 창의성이 영국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스톤 회장은 2009년 한국이 아부다비 바라카 원전 사업을 수주할 당시 UAE 정부 자문을 맡았다. 그는 “원전 분야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한국이 왜 영국 원전 건설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전은 2017년 말 22조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권을 일본 도시바로부터 인수하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영국 정부와 도시바의 협상이 길어지면서 작년 8월 우선협상자 지위를 잃어 수주가 불투명해졌다.
스톤 회장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늦어지고 있지만 영국은 2025년까지 노후화된 원전 절반을 교체해야 한다”며 “한국이 지금처럼 소극적이면 결국 중국 업체들이 한국 대신 영국 원전을 건설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中, 고위간부가 상주하며 영국 원전 사업 직접 챙겨"
티머시 스톤 영국 원자력산업협회장(사진)은 “중국은 한국과 달리 원전회사의 고위 간부가 영국에 상시 주재하며 영국 원전 사업을 챙기고 있다”며 “일본 히타치가 2012년 영국 원전 사업을 수주할 때도 이렇게 성공했는데 중국이 일본을 따라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광핵그룹(CGN)은 2015년 프랑스 국영 에너지회사인 EDF와 함께 영국 남부 힝클리포인트 원전 사업자로 선정된 데 이어 영국 브래드웰에 중국형 원전을 건설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스톤 회장은 현재 상황을 극복할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전력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같은 세계적인 원전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 계획을 내놓는다면 영국 정부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갖춘 데다 한국형 원전은 발전단가도 저렴하다”며 “영국 정부는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할 한국을 반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톤 회장은 영국 원전의 사업성도 설명했다. 그는 “원전 건설에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한전이 아부다비에서 한 것처럼 영국에 4기의 대형 원전을 지으면 규모의 경제로 비용 부담을 덜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영국 정부가 제안한 규제자산베이스(RAB) 모델을 적용하면 수입 보장 기간이 35년에서 60년으로 늘어 한전이 초기 투자 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RAB 모델은 영국 정부가 신규 원전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차입 장치를 제공하고 프로젝트 지분 3분의 1 정도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반면 한전은 자체 자금으로 원전을 지은 뒤 생산한 전기를 해당 국가 정부에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발전차액보조(CfD) 방식을 선호한다. 스톤 회장은 “한전이 영국 원전 건설에 의지를 보인다면 앞으로 영국에서 기회가 많을 것”이라며 “연내 영국 정부가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에 관한 백서를 발표하는데 신규 원전 추가 지정 계획도 들어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스톤 회장은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 “한국이나 일본 독일 모두 원전 사업에 정치가 개입돼 있다”며 “원전에 반대하는 정파가 집권하면서 원전의 장점을 전혀 설명하지 않고 단점만 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면 영국에선 정부와 원전업계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일해 원전을 향한 불신이 거의 없고 좌파 정당인 노동당까지 친원전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톤 회장은 ‘한국의 탈원전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태양광이나 풍력은 전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없어 대체 용량을 지닌 발전 시설을 지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원전과 화석연료 외에 대안이 없다”고 했다. 이어 “결국 원전을 배제하면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고 그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톤 회장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SG워버그, 체이스맨해튼은행 등을 거쳐 2004년 KPMG에 입사해 에너지인프라 부문 회장을 지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영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12월 영국원자력산업협회장으로 취임했다.
런던=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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