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던 글로벌 통화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미국 상무부는 중국을 겨냥해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국가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규정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 주말 발표했다. 두 나라가 무역전쟁을 환율전쟁으로까지 몰고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과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다.
성명서에서 미 상무부는 통화가치 절하를 ‘통화 보조금(currency subsidies)’으로 정의하며 상계관계를 통해 상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환율전쟁은 관세를 무기로 한 그간의 무역전쟁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관세전쟁이 제한된 지역에서의 지상전이라면, 환율전쟁은 대량살상무기가 난무하는 공중전이자 전면전으로 볼 수 있다.
타깃은 중국이지만 유탄은 한국으로 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을 1, 2위 교역국으로 둔 데다,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도 기록 중이다. 통화전쟁으로 위안화 가치가 급변한다면 최근 위안화와의 동조 움직임이 뚜렷한 원화가치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3월 ‘환율시장 안정 조치 내역’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원화 약세를 유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환율전쟁 사정권에서 벗어났다고 보는 것은 금물이다. 환율은 언제나 정치 이슈이며, 국제 금융시장은 냉엄한 국제 정치질서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 외신에서 환율전쟁 소식을 전하며 “한국도 고율관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배경이다.
환율 급변동은 파괴적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의 빌미가 1985년의 ‘플라자 합의’였던 데서 잘 알 수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인 만큼 안정적인 환율 움직임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한 달간 원·달러 환율은 벌써 4.4%나 평가절하됐다. 같은 기간 인도 태국 러시아 멕시코 등의 평가절하가 1.0%에 못 미치고,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율도 2.8%라는 점은 원화의 취약성을 잘 보여준다.
실물이 튼튼하다면 환율 변동은 시간과 함께 진정되지만 지금처럼 부진한 체력 아래서는 환율과 경기가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글로벌 환율전쟁이 확전돼 체력에 맞지 않는 원화 강세가 진행된다면 ‘한국 경제의 버팀목’ 수출에도 결정타가 될 것이다.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 부처가 그 어느 때보다 경제외교에 합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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