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탈출! 新제조업이 희망이다
(3)·끝…제조업 부활 남은 과제는
[ 김재후 기자 ]
제조업을 해외로 떠미는 건 무리하고 황당한 요구를 일삼는 강성 노조만이 아니다. 숨막히는 규제, 기업을 옥죄는 정책, 지역 이기주의, 반기업 정서 등도 제조업 성장을 막는 ‘적폐’로 꼽힌다. 경영계에서는 ‘제조업 5적(敵)’이라고 부른다. 이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줄잇는 탈(脫)한국 행렬과 속출하는 공장 폐업을 막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1)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규제
기업들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및 시행규칙 등이 본격 시행되면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워진다고 호소한다.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산안법에 규정된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 명령권’이 대표적이다. 작업 중지의 판단 기준이 ‘중대 재해가 난 작업과 동일한 작업’ ‘산업재해가 확산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등 불가피한 경우’ 등으로 모호하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공장이 한번 가동을 멈추면 라인에 투입된 원재료를 모두 못 쓰게 돼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며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국내에서 연간 1t 이상의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기업은 모든 화학물질을 사전에 등록하도록 한 화평법도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한 중소 화학업체 대표는 “전 직원이 10명뿐인 회사가 공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등록하기 위해 유해물질 전문 인력을 채용할 수 있겠느냐”며 “사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기업 관련 법안이 1500개 이상 발의됐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833개가 규제 법안인 것으로 분석됐다.
(2) 기업 성장 가로막는 일방통행식 정책
수도권 내 공장의 총량을 제한하는 수도권 규제도 기업들을 해외로 내모는 정책으로 꼽힌다. 수도권에 있는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바이오 업종 특성상 고급 연구인력이 회사의 경쟁력인데, 우수 인재들은 경기 동탄 아래 지역으로는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수도권에서는 공장을 증설할 수 없고 지방에 지으면 우수 인력이 오지 않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해외로 빠져나간 중소기업은 지난해에만 2870개(한국수출입은행)에 달한다.
태양광 전지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OCI는 전북 군산 공장을 증설하는 대신 말레이시아에 두 번째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될 전망이어서다. 폴리실리콘을 생산할 때 전기가 많이 드는데, 말레이시아 전기값은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회사 군산 공장은 전기요금으로만 연 3000억원가량을 쓴다.
(3) 강성노조와 기울어진 노동정책
경영계에서는 매년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고임금·저효율’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지적한다. 독일, 일본 등 선진국 제조업체들이 협력적 노사관계와 합리적 노동제도를 바탕으로 성과 중심 임금체계를 도입해 경쟁력을 끌어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리고 주 52시간 근로제(근로시간 단축제)를 밀어붙였다. 성과중심 임금체계 도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4) 투자 의욕 꺾는 반기업 정서
지난해 8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동하자 ‘투자 구걸’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 “정부가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하자 청와대까지 나서 사실무근이라고 진화해야 했다. 경영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반기업 정서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한다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틈만 나면 기업에 투자를 종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루이지애나에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투자해 석유화학 공장을 준공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백악관에 초청해 직접 만나기도 했다.
(5) 기업 볼모로 잡는 지역 이기주의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극심한 지역 이기주의와 싸워야 했다. 2015년 충남 당진시는 평택과 당진 사이에 있는 바다를 매립해 생긴 96만2350㎡ 규모의 땅 중 상당 부분이 평택시로 편입되자 평택으로 전력을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평택에 들어선 반도체 공장은 가동할 수 없게 된다.
당진시의 몽니는 직류를 교류로 바꿔주는 장치인 변환소의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변환소가 없으면 당진에 있는 발전소에서 평택으로 전기가 갈 수 없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의 전력을 볼모로 삼는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황당해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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