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은 화가의 명예 문제이기도 한데
너무 올라 되레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원희 < 서양화가 >
반 고흐는 처음 그림이 팔렸을 때 그림을 팔아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그림이 50장쯤 되면 우리가 이전에 너무나 불우했던 것을 메울 수도 있을 것이다. … 뒤에 가서는 그것은 어느 것이나 반드시 50프랑으로는 팔릴 테니까”라고 희망에 찬 심정을 밝혔다. 50프랑이면 지금의 화폐가치로 30만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
고흐의 작품은 그가 죽은 지 100년 뒤 경매에서 1000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된 ‘아이리스’를 필두로 미술시장에서 초고가 행진을 이끌고 있다. 30여 년 전 ‘아이리스’ 경매 이후 초고가 그림 가격은 꾸준히 올라 2017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레 문디’가 5000억원에 육박하는 낙찰가를 기록하며 대중은 범접하기 힘든 세상의 일이 돼 버렸다. 진짜인지도 확실치 않은 그림 한 점의 값이 5000억원이라는 것도 적응하기 힘든데,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갈까 하는 호기심까지 발동한다. 이제는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생존 작가의 그림값도 1000억원이 넘는 시대가 됐다. 중국에서는 자기네 그림값이 피카소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며 경매에서 기록을 만들어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100억원이 넘는 그림이 거래된 기록이 없다. 경제 규모에 비해 그림값이 싼 편이라는 판단에서 우리네 단색화가 세계시장에서 잘 팔린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거대 화상들이 투자가치를 보고 사들인다는 얘기다.
그림값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수준일까?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싼 가격에 좋은 그림을 구입하고 싶겠지만 화가에게 그림값은 단순한 수입이 아니라 자존심과 명예 등 심리적으로 작용하는 문제여서 좀 더 복잡하다. 미술시장에서 기록이 쏟아질 때마다 좀 착잡한 심경이 된다. 그림값은 이래저래 화가에게도 부담스러운 게 돼버린 느낌이다.
초고가 기록이 보도될수록 일반 애호가들은 그림값이 비싸다고 느낄 것이다. 그림이 일부 특권층의 향유물로 인식돼 미술시장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초고가 그림값이 대중과의 간극을 너무 크게 만들어 대부분의 화가를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닐까?
화가에게 적절한 수입은 창작의 동력이 되지만 돈 때문에 인간관계가 헝클어지기도 하고, 흥청망청하다가 빚에 쪼들리게 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인 렘브란트가 전성기에는 초상화 한 점에 당시 암스테르담시장의 연봉에 맞먹는 값을 받았을 정도로 부를 누렸지만, 말년에는 대중과 멀어지면서 빚에 쪼들려 집과 가재도구들이 공매에 넘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인상주의자 모네는 복권에 당첨돼 지베르니에 집을 사고 정원을 지나는 시냇물에 수련을 심어놓고 열심히 그리다가 당시 프랑스 대통령 클레망소의 제안으로 오랑주리 미술관에 거대한 수련 연작을 남기기도 했다.
후대 사람들의 눈에는 고흐가 정신병에 시달렸다거나, 다빈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떠돌다가 이국땅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다거나 또는 렘브란트가 빚에 쪼들렸다거나, 모네가 복권에 당첨됐다거나 하는 사실보다는 그들의 걸작들만 보이는 법이다.
학창시절 은사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료비만 나오거든 그림을 팔아라.” 그런다고 살아왔는데 이젠 내 그림값도 데이비드 호크니나 중국 작가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꽤 비싸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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