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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선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아름다운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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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선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아름다운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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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으로 5대양 거친 파도 헤치며 수산제국 일궈

전격 은퇴 선언한 김재철 회장
어선 1척·선원 3명으로 창업
세계 최대 수산회사 꿈 이뤄
개척·모험정신으로 위기 돌파
'참치왕" '21세기 장보고'로 불려



[ 김보라 기자 ]
동원산업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지난 16일 경기 이천 연수원에서 열렸다. 기념사를 하던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사진)이 말했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겠습니다.” 장내는 조용해졌다. 그룹 회장의 은퇴 선언이었다. 하지만 일반 선장의 은퇴식과 다르지 않았다. 오래전 함께하던 뱃사람들 그리고 직원들과 사진을 찍는 것이 끝이었다. 참치왕, 재계의 신사, 21세기 장보고로 불린 김재철 선장은 50년 짊어진 파도 같았던 짐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나 같으면 바다로 가겠다”…인생 항로 바꿔준 선생님

1934년 전남 강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재철 (전·이하 전 생략)회장은 공부에 재능이 있던 그였다. 하지만 고3 때 선생님의 한마디에 인생 항로를 바꿨다. “나 같으면 바다로 가겠다.”

그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작 뱃놈이 되겠다는 것이냐”는 아버지의 호통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갔다. 수산대(현 부경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수많은 청춘이 배를 타다 영원히 바다로 가버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가 출항한다는 얘기를 듣고 배에 몸을 실었다.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쓴 채. 대학을 졸업한 청년 김재철은 선장이 됐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항해를 시작했다. 일본 배를 빌려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저들을 넘어서리라.’

대한민국 산업사에 큰 족적 남겨

김 회장은 대한민국 산업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동원산업은 1970년대 외화벌이의 주역이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새로운 단백질인 참치의 공급원이었고, 해양 개척의 중요성을 알렸다. 다른 기업이 내수 시장에서 시작한 데 비해 동원산업은 세계무대에서 출발했다.

김 회장은 1958년 남태평양 사모아로 향하는 참치잡이 어선 지남호에 승선했다. 7년간 배를 타고 지구 200바퀴를 돌았다. 1960년대 이전까지 한국 선박들은 제주도를 못 벗어나고 있었다. 김 회장은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은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본금 1000만원, 직원 3명으로 서울 명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눈은 오래전부터 미래와 세계를 향했다. 수산업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는 종합식품회사와 금융업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해양 개척으로 외화벌이 ‘주역’

동원산업은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참치를 잡아 팔고 대부분 달러로 그 값을 받았다. 바다에서 잡은 모든 참치는 거의 전량 해외 시장으로 수출했다. 김 회장은 “우리는 자원이 없는 나라지만 바다 개척을 통해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 배를 탔을 때는 일본이 쓰다 버린 배를 타고 가야 했고, 외국에 나가서도 홀대받는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선장을 하며 익힌 순간 판단력은 그를 승부사로 만들었다. 거대한 위기는 동원그룹이 성장하는 기회로 변하곤 했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1차 오일쇼크 때 동원은 창사 4주년이 된 작은 수산업체였다. 천정부지로 유가가 올라 외국 회사들이 사업을 축소할 때 김 회장은 국내 최대 규모인 4500t급 ‘동선호’를 건조했다. 선가만 1254만달러로 당시 참치연승선 10척을 건조할 수 있는 돈이었다. 동원산업 전체 자산보다 많은 액수였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가였다.

생사를 넘나들며 터득한 경영철학

김 회장의 아호는 ‘자양(滋洋)’. ‘큰 바다가 평생 나를 키웠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 담겼다. 그는 바다에서 인생과 기업 경영의 모든 것을 깨우쳤다. 바다는 두려움도 없애줬다. 그는 “배 타고 나갔을 때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육지에서 아무리 무슨 일이 터져도 더 큰 일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바다 위에서 생과 사를 넘나든 시간이 동원그룹과 김 회장의 반세기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인터뷰와 어록 등을 통해 그의 경영원칙을 정리하면 △태풍이 오면 선원은 파도가 아니라 선장을 본다 △폭풍우가 지나면 큰 어장이 형성된다 △동원은 연안에서 고기를 잡지 않는다 △본업을 버려도, 본업만 해도 망한다 △경영은 지분이 아니라 실력으로 한다 △기업도 시민이다 △1만 t의 배도 구멍 하나로 무너진다 등으로 요약된다.

‘文史哲 600권’이 인생 지론인 평생 독서인

김 회장의 삶에서 책은 빼놓을 수 없는 벗이다. 그는 세계 바다를 누비며 수많은 외국인을 만났고, 책에서 대화 소재를 찾았다. 평생 책을 끼고 살게 된 이유다. 그의 인생 지론 중 하나는 ‘문사철 600’이다. 평생에 걸쳐 문학책 300권, 역사책 200권, 철학책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 회장은 “문학책은 정신적 풍요에 더해 남들과 대화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며 “역사책은 옛사람들의 슬기를 빌려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철학책은 미래를 앞서 볼 수 있는 예견력과 통찰력을 갖추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NIE 포인트

거친 파도를 헤치며 세계 최대 수산회사를 일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업적을 정리해보자. 바다를 누비며 터득한 그의 경영철학에 대해 토론해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가들을 살펴보고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도 알아보자.

김보라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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