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락근 정치부 기자) ‘전략적 의사소통과 전술적 협동’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내용을 소개하면서 전한 말입니다.
지난 26일 조선중앙통신은 “중대한 고비에 직면한 조선반도 정세 추이에 대하여 분석 평가하고, 조로(북·러) 두 나라가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여정에서 전략적 의사소통과 전술적 협동을 잘해나가기 위한 방도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의했다”고 26일 보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전략적 의사소통과 전술적 협동’이라는 레토릭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얼핏 들으면 외교무대에서 사용하는 추상적이기도 하고 상투적인 문구로 들릴 수 있지만, 아무한테나 쓰는 말이 아니라는 건데요. 북한이 이 같은 표현을 쓴 상대국은 중국이 유일합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3월 비공식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뿐만 아니라 5월 중국 다롄(大連), 6월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졌을 때도 이 같은 표현을 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당연히 쓰지 않았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맺던 ‘혈맹’ 수준의 관계에 대해 북한이 쓰는 수사”라며 “김정은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국과의 관계에 버금가도록 격상하고 싶어하는 의도가 읽힌다”고 해석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더 이상 사회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현재 러시아와 관계는 과거 소련과의 관계 만큼 가깝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푸틴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이 같은 표현을 썼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죠.
푸틴 대통령도 정상회담이 끝난 뒤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필요성을 강조하며 6자 회담 카드를 언급했습니다. 러시아가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비춘 건데요. 북한은 앞으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전에서 러시아를 중요한 지렛대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의사소통과 전술적 협동을 언급한 것도 “우리 뒤를 봐주는 건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있다”고 공식 천명한 것이랄까요. 향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의 존재가 변수가 될지 주목됩니다. (끝)/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