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혁 지식사회부 기자) 지난 25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집행정지 불허가 결정된 직후였습니다. 법무부가 박상기 장관 명의로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최근 법집행기관을 상대로 노골적인 협박과 폭력 선동을 일삼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범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등 내용이었습니다.
1시간 30분 가량 지나자 이번엔 대검찰청에서도 문자가 왔습니다. 해당 행위는 법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란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더불어 장관의 지시를 받들어 관련 범죄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도록 일선 청에 지시했다고도 밝혔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 24일 한 유튜버가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집 앞에서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며 윤 지검장의 신변을 위협하는 듯한 내용의 방송을 한 데 따른 조치라는 게 법조계 중론입니다. 그는 방송에서 날계란 두 개를 보이며 이를 윤 지검장에게 던질 것을 암시했습니다. 윤 지검장의 차량번호를 알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자살특공대’ 운운하기도 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 방침에 수긍하는 분위기입니다. 검사와 판사 개인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실제로 대법원, 대검찰청 등이 위치한 서초동 법조타운 거리 곳곳에는 수사 결과나 판결에 불만을 갖고 담당 검사와 법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현수막들이 다수 걸려 있습니다.
그들의 실명과 사진 등 인적사항을 내걸었으며 ‘파면하라’ ‘처벌하라’ 등 구호도 난무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최고 수사기관의 장을 향해 실제로 신변 위협 움직임이 일어난 것을 그저 간과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법무부와 법무부의 외청인 검찰이 자기 사람 챙기기만 한다는 소리도 나옵니다.
최근에 판사들에 대한 위협과 인신공격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서울회생법원장), 올해 1월 김경수 경남지사를 1심에서 법정구속시킨 성창호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현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 등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성 부장판사는 갖은 협박에 시달려 법원으로부터 신변보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법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5~2016년엔 법관에 대한 신변보호가 단 한 건도 없다가 2017년에 1건, 지난해엔 5건까지 증가했습니다.
법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법무부와 검찰은 침묵했습니다. 이번 엄단 대처 발언을 두고 ‘이중잣대’ 비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검찰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박 전 대통령 지지자 등 보수세력의 침묵을 이끌어내려는 속내가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약 과거 판사들이 위협받았을 때도 법무부와 검찰이 목소리를 냈다면 이같은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이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강경 메시지를 잇달아 전달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2017년엔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가 ‘야구방망이 시위’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 등이 박 특검 집 앞에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그를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같은 조치는 없었습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목표물이 윤석열 지검장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양승태 이재용 신동빈 등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대기업 오너 등을 모두 구속하며 ‘적폐청산’을 이끈 그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는 얘기입니다.
‘항명 검사’의 대명사인 그가 언제든 현 정부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윤 지검장을 보호하기 위해 평소와 다른 ‘과도한 액션’이 나왔다는 게 항간에 떠도는 말입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이번 발언이 단순히 윤석열 보호하기에만 그쳐선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검찰이 법관 등을 위협하는 정부 지지자들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박상기 장관과 문무일 총장의 ‘법집행기관 협박에 대한 엄단 및 수사 지시’는 백번이고 옳은 주장입니다. 수사기관이 여기서의 ‘법집행기관’을 ‘검찰’ 혹은 ‘윤석열’으로만 좁혀 해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끝) /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