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 영문판 펴낸 정몽준 이사장
그랜드하얏트호텔서 출판기념회
[ 이지현 기자 ]
“아버지 회고록의 영문판을 출간한 것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도 성실하게 산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책이 기업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 영문판(Born of This Land·오른쪽 사진)이 발간됐다. 1997년 국문판이 나온 지 22년 만이다. 영문판 발간을 주도한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23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회고록이 일본어, 중국어로도 번역되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념회 자리에는 정 이사장과 에드윈 퓰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캐런 하우스 전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인, 폴 울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책은 정 명예회장이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사업을 일으킨 뒤 세계적 기업으로 일군 과정을 적은 기록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북한 경협 등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활약한 정 명예회장의 일대기가 담겼다. 그동안 영문판을 발간하려는 기획은 여러 차례 있었다. 베트남에선 비공식 번역본이 유통돼 50만 부 넘게 팔렸다. 정식 외국어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이사장은 “아버지의 문체가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번역을 주저했다”며 “이번 영문판에는 부족하나마 반영됐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동안 이룬 성취보다 매일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가 기억에 남는다”며 “아버지는 ‘일의 순수성에 대한 믿음이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유산’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책의 서문을 직접 썼다. 서문을 통해 그는 정 명예회장을 “나의 가장 큰 스승”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해방과 6·25전쟁의 혼란을 겪은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에서 기업과 나라를 일으키고자 벌인 투쟁의 기록”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그는 “아버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삶을 사셨다”며 “주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반대하면 아버지의 답은 ‘이봐, 해봤어?’였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부친을 “어려운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볼 줄 아셨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항상 나라를 잊지 않았던 애국자라고도 했다. “‘현대’는 장사꾼 모임이 아니라, 나라 발전의 진취적인 선도 역할과 경제 건설의 중추 역할을 사명으로 하는 유능한 인재들의 집단이다.” 생전 정 명예회장이 자주 했던 말이다.
정 이사장은 ‘아버지의 귀향’도 언급했다. 1998년 정 명예회장은 1001마리 소떼를 몰고 비무장지대를 넘었다. 한 마리는 고향에서 가출할 때 소 한 마리 판 돈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한 원금이었다. 나머지 1000마리 소와 이를 운송하던 100대의 트럭은 이자였다. 정 이사장은 “남북 관계는 위기에 봉착했고 한국 경제와 정치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어떤 사람은 ‘한강의 기적’이 ‘한강의 신기루’로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는 정 명예회장이 좋아하던 시 ‘청산은 나를 보고’로 서문의 끝을 맺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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