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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뛰어놀 곳 태부족" vs "놀이터 생기면 마을 개판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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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리포트

반려동물 1000만시대
놀이터·장묘시설 놓고 곳곳 '잡음'



[ 장현주 기자 ]
‘천년고도 옛길에 애견공원 중단하라.’ ‘조선왕조 발원지에 애견공원이 웬말이냐.’

5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연화마을에는 이처럼 반려견 놀이터 설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전주시는 지난해 전주 덕진공원에 반려견 놀이터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전주에 반려견 놀이터가 조성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근 주민들은 소음과 악취 등 부작용을 우려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신기섭 연화마을 통장은 “애견공원이 들어오면 온 마을이 ‘개판’이 될 게 뻔하다”면서 “전주시를 항의 방문하는 등 주민들이 똘똘 뭉쳐 결사반대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시설’ 된 반려견 놀이터

‘반려동물 1000만 시대’에 관련 시설을 둘러싸고 반려인과 비반려인 간 갈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동물 장묘시설뿐만 아니라 반려견 놀이터까지 혐오시설로 인식되면서 “내 앞마당에는 안된다”는 ‘님비(NIMBY)’ 현상도 불거지고 있다. 양측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관련 지방자치단체들이 골머리를 앓는 모습이다.

서울 노원구는 올해 초부터 월계동 영축산 근린공원에 반려견 놀이터 설치를 추진해 왔다. 반려견 놀이시설 2곳과 배변 공간, 음수대, 보호자 휴게시설 등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반려인들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난 2월 열린 주민 설명회에서 반대 민원이 쏟아졌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우리 애 놀이터도 없는데 반려견 놀이터가 왜 필요한가”라고 반발했다. 주민들은 소음과 환경, 자녀 안전 등 반대 사유를 정리한 진정서 300여 개를 구청에 전달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오는 4월 개장이 목표였지만 주민 항의에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반려견 놀이터 설치 사업이 난항을 겪는 것은 전주나 노원구뿐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달 19일 발표한 ‘동물 공존도시 기본계획’에서 시내 반려견 놀이터를 기존 4곳에서 2022년까지 구마다 하나씩 총 25곳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이를 포기하는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다. 야심차게 반려견 놀이터를 추진했던 서울 강서구나 중랑구도 논란 끝에 계획을 철회했다.

이렇게 되자 갈수록 세가 불어나고 있는 반려인들의 실망도 커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전국 574만 가구에서 총 874만 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2027년까지 반려동물 숫자는 1320만 마리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김모씨(23)는 “최근 개물림 등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아이’와 함께 길거리에서 산책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는 실정”이라며 “그렇다고 답답한 아파트 집 안에서만 지낼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반려동물이 목줄을 풀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반려견 놀이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반려견 놀이터는 고작 31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 장묘시설은 갈등 첨예

이미 오래전부터 혐오시설로 낙인찍힌 동물 장묘시설은 갈등이 더욱 심각하다. 동물 장묘시설 수요는 점차 커지고 있는데 관련 시설은 태부족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7년 반려동물 사체 발생량은 68만8000마리에 달한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의 사체는 화장하거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질병 등으로 동물병원에서 사망할 경우 의료폐기물로 분류돼 자체 처리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한 반려동물을 장사 지내기 위해 전용 장묘시설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실시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 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동물 장묘시설을 이용하겠다’는 응답자가 55.7%로 집계됐다.

문제는 주민 반대로 동물 장묘시설 설립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동물 장묘시설은 동물 장례식장과 화장장, 납골당 등으로 구성된다. 올 4월 현재 전국에 등록된 동물 장묘시설은 34곳에 그쳤다. 서울 인천 제주 등에는 동물 장묘시설이 아예 없다. 광주 광산구 송학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동물 장묘시설은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답보 상태다. 주민들은 “인근 마을에 환경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 서구에 추진 중인 동물 장묘시설도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여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불법 이동식 화장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동물 장묘시설이 대부분 접근성이 떨어지는 교외에 있어서다. 이동식 화장업체들은 집 앞까지 찾아와 사체를 화장해준다. 전국적으로 10여 곳이 영업 중이다. 농식품부는 올해 상반기 ‘불법 이동식 반려동물 화장업체’ 지도·단속을 시행할 예정이다.

“사회적 합의 도출 나서야”

전문가들은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현중 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원은 “반려동물 시설 추진 초기 단계부터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이 적극 참여하는 토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며 “양측의 견해차를 좁히는 다양한 방안도 연구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지자체도 다양한 실험에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최근 온라인 찬반 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지난달 4일부터 한 달 동안 운영된 ‘시민토론 ON AIR’에서 ‘반려견 놀이터 조성 Yes or No’ 투표를 한 결과 약 80%가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 관계자는 “부산은 전국에서 반려동물을 보유한 가구 수가 세 번째로 많은 광역단체”라며 “2017년 반려견 놀이터 설치가 한 차례 무산된 뒤 공론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주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해당 마을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대안도 추진되고 있다. 경기 용인시는 반려동물 문화센터 및 공설 동물 장묘시설을 건립하기로 하고 시설을 유치할 마을을 공모 중이다. 용인시는 장묘시설 내 카페와 식당, 장례용품점 운영권을 주민들에게 부여할 방침이다. 10억원 이내에서 주민 숙원사업도 지원하기로 했다. 동물권단체인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장묘시설과 각종 문화·편의시설 등이 결합한 복합공간을 설치한다면 주민 불만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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