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프런티어 - 윤채옥 진메디신 창업자
항암바이러스 차세대 치료제 각광
전신투여 방식 혁신기술 개발
효능은 높이고 부작용은 줄여
[ 박영태 기자 ] “치료 대안이 마땅치 않은 말기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혁신적인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해내겠습니다.”
바이오벤처 진메디신 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윤채옥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56)가 밝힌 포부다. 2014년 한양대 학내 벤처로 출발한 진메디신은 바이러스 기반의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판매 중인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는 다국적 제약사 암젠의 ‘임리직’과 중국 바이오기업 선웨이바이오텍의 ‘온코린’이 전부다. 하지만 항암바이러스 치료제가 화학항암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를 잇는 차세대 항암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항암바이러스 치료 후보물질(파이프라인) 임상은 80여 건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신라젠이 대표 주자다. 그런데도 후발주자인 진메디신이 주목받는 이유는 ‘파괴적’ 기술력에 있다. 어느 누구도 아직 넘지 못한 말기암 치료 가능성을 높이고 있어서다.
세계 ‘톱4’ 항암바이러스 연구자
윤 CTO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 1세대다. 서강대 생물학과를 나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하버드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으면서 유전자 치료 연구를 시작했다. 1996년이었다. 유전자 치료제 개념조차 낯설던 때였다. 당시 그는 지도교수를 도와 최근에야 차세대 항암제의 하나로 떠오른 CAR-T 치료제 연구도 했다. 윤 CTO는 “임상 2상까지 갔지만 시류를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다”며 “당시 연구하던 기술은 요즘 활용되는 CAR-T 기술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그는 2000년 연세대 의대 교수로 부임하고서도 유전자 치료제 연구를 계속했다. 특히 항암바이러스 연구에 힘을 쏟았다. 바이러스가 지닌 매력 때문이었다. “바이러스는 유전자를 가장 잘 전달하는 속성이 있고 그렇게 진화해왔습니다. 치료 유전자 전달체의 80%가 바이러스인 이유죠. 증식하면서 암세포를 용해하는 능력도 탁월합니다. 바이러스의 속성을 제대로 살린 항암제 연구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윤 CTO는 아데노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항암제 연구에 매진했다. 지금까지 해외 유명 저널에 발표한 연구논문만 189건에 이른다. 연구 성과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항암바이러스 분야에서 세계 톱4 연구자로 꼽힐 정도로 인정받는 과학자다. 그런 만큼 이 분야에서 윤 CTO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는 유전자 치료분야 세계 최고 학술지로 꼽히는 ‘몰레큘러 세러피(Molecular Therapy)’의 부편집장을 9년째 맡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이 학술지에 연구논문이 실리기 어렵다. 미국 유전자치료학회, 국제 암유전자치료학회 등의 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유전자 치료 분야의 최신 연구논문을 스크리닝하는 일을 하다 보니 트렌드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잠재력 큰 항암바이러스
바이러스를 이용한 암 치료 가능성이 발견된 것은 1956년이다. 아데노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암 크기가 줄어드는 게 처음 발견됐다. 1971년에는 버킷 림프종 환자가 홍역에 감염된 이후 암이 자연적으로 치유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항암바이러스는 암세포를 찾아가 공격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바이러스다. 면역 유도 물질을 방출하면서 주변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기도 한다.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면역 억제 물질을 만들어 정상세포인 것처럼 위장하는데 항암바이러스가 이를 방해하는 것이다.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데다 면역체계까지 활성화하는 장점 때문에 항암바이러스는 이상적인 치료제로 꼽힌다.
항암제 개발에 활용되는 바이러스는 우두바이러스, 헤르페스바이러스, 홍역바이러스, 리오바이러스, 코사키바이러스 등 10여 종이다. 진메디신은 아데노바이러스를 활용한 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윤 CTO는 “아데노바이러스는 다른 바이러스보다 환자에게 투여한 사례가 많다 보니 안전성이 입증됐다”며 “1만~10만 개로 증식이 가능해 다른 바이러스에 비해 생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항암바이러스 치료제에 대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MSD가 호주 바이오기업 바이랄리틱스를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면역관문억제제만으로는 면역세포를 완전히 활성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항암바이러스가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에 적합한 치료제로도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전신 투여 기술 확보”
항암바이러스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간독성 부작용이 대표적이다. 항암바이러스가 몸에 들어가면 독소로 인식돼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는다. 이 때문에 혈액에 항암바이러스를 투여하면 5분 만에 95%가 사라진다. 효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항암바이러스 생존율을 높이려고 용량을 늘리면 간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진행 중인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임상의 80% 이상이 국소 투여로 이뤄지는 이유다.
윤 CTO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열쇠를 찾아냈다. 우선 바이러스에 주입한 치료 유전자의 효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프로모터, 최대 4종의 치료유전자를 동시에 삽입하는 기술을 확보해 기존 제품에 비해 효능을 크게 높였다. 암 조직에 바이러스가 넓게 분포할 수 있도록 세포 외 기질(세포를 보호하고 지지해주는 외막)을 없애는 기술도 개발했다. 그는 “기존 항암바이러스 대비 고농도의 치료유전자 발현이 6200배 많다”며 “다양한 발암기전을 동시에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그만큼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전신 투여용 바이러스 기술도 확보했다. 바이러스를 코팅해 몸속 면역세포 등이 바이러스를 독소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위장 기술이다. 윤 CTO는 “우리가 개발한 아데노바이러스는 혈액에 투여 시 경쟁 바이러스 대비 400~600배 이상 생존한다”며 “온코린 등 다른 항암바이러스에 비해 간독성도 20만 배 가까이 낮다”고 강조했다. 전신 투여용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는 암 치료 방식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는 “정맥주사로 간단하게 전신 투여 치료를 하는 것은 암 조직을 떼어내는 수술 치료보다 훨씬 간편하다”며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운 말기암 환자에게 치료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클 것”이라고 했다.
기술수출 협상하다 창업 결심
윤 CTO는 연세대 의대 교수 시절부터 기업 등에 꾸준히 기술이전을 해왔다. 그의 손으로 이뤄진 기술이전은 지금까지 총 12건에 이른다. 중학교 때 멘델의 법칙을 공부하면서 유전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그는 한눈 팔지 않고 오롯이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2007년 무렵 연구성과가 제품화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업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창업에 나선 것은 미국 나스닥 상장사와 기술이전 협상을 하면서였다.
“2011년 한양대로 자리를 옮기다 보니 특허기술 소유권이 저와 연세대, 한양대 등에 나뉘어 있었어요. 기술이전 협상과 계약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죠. 협상 파트너 측으로부터 회사를 세우면 기술이전 계약절차가 간단해진다는 말을 듣고 창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4년 11월 진메디신을 세운 윤 CTO는 줄곧 CTO 직책만 고집했다. 현재는 동료 교수인 김인욱 교수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윤 CTO는 “바이오벤처의 경쟁력은 마케팅 또는 홍보가 아니라 기술력으로 판가름난다는 생각에 연구개발(R&D)에 집중했다”며 “최근 전문경영인 등을 영입해 회사 체계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진메디신이 지금까지 등록과 출원을 마친 특허 건수는 해외 141건, 국내 100건이다. 윤 CTO는 “대학 측에서 웬만한 중견 바이오기업도 갖추지 못한 동물실험실 등을 파격적으로 지원해준 것이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내년 본격 임상 돌입”
진메디신이 개발 중인 후보물질은 3개다. 전이암 치료제(GM101), 췌장암 치료제(GM102), 폐암 치료제(GM103) 등이다. GM101은 이미 임상 1상을 마쳤다. 전이암 환자 21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임상설계 오류로 어려움을 겪었다. 윤 CTO는 “투약 후 암조직이 25% 이상 커지거나 너무 작은 암세포에는 투약을 중단하는 것으로 임상을 설계했다”며 “암조직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암조직이 두 배까지 커지기도 하는 특성 등을 반영하지 못해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임상 2상에서는 이런 문제를 보완할 계획이다. 그는 “내년 임상 2상을 하고 2021년 조건부 승인을 받아 출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췌장암 치료제와 폐암 치료제도 임상을 준비 중이다. 폐암 치료제는 올해 비임상 독성검사를 거쳐 내년 임상 1상에 나설 계획이다. 췌장암 치료제는 2021년 임상 1상 진입이 목표다. 윤 CTO는 “막대한 임상 비용 부담을 감안해 국내에서 먼저 임상을 하고 글로벌 임상은 차후에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면역항암제 등과의 병용 임상도 검토 중이다. 그는 “다국적 제약사 등으로부터 병용투여 공동개발 제의가 많다”고 했다. 증시 상장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파이프라인 개발 속도를 봐가며 2~3년 뒤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윤 CTO는 “항암바이러스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며 “세계 유전자 치료제 시장을 선도하는 바이오 기업으로 발돋움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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