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정책의 과제와 방안
소득보조와 고소득 누진세 통한 재분배가 포용정책 기본
공무원 증원보다는 직업능력 향상시켜 일자리 늘려야
실업·주거 복지 늘리고 기부문화 정착시켜야 포용 완성
박재윤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포용’은 ‘혁신’ ‘공정’과 더불어 정부의 3대 경제정책 기조 중 하나다. 포용은 저소득저자산층과 무소득무자산층 등 경제적 취약계층을 지원해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고 함께 경제 발전 과정에 참여하게 이끄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모든 노력을 생산 확대에만 집중했다. 반면 소득 및 자산 분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로 인해 계층 간, 지역 간 경제적·사회적 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지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지속적인 성장에 중대한 장애요인이다.
포용이야말로 이 같은 장애요인을 제거해 사회적 안정과 지속적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중차대한 정책 기조다. 아울러 포용정책은 저출산 등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포용정책이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 금기가 있다. 그것은 포용정책이 최저임금제와 최고근로시간제를 제외하고는 기업의 생산과정과 분배과정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의 생산과정과 분배과정에 포용정책이 개입하면, 기업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키고 왜곡하게 된다. 포용정책이 포용을 위해 활용해야 하는 소득 자체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포용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의 생산과 분배는 기업의 경영전략과 노사협상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고 포용정책은 기업에서의 생산과 분배가 이뤄진 뒤 그 결과를 활용해 포용을 추진해나가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생산과정과 분배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 활동에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포용정책이 아니라 다음 기회에 논의하게 될 공정정책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과제다. 포용정책은 아래와 같이 크게 다섯 가지 영역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생산분배과정 개입은 금기사항
첫째, 최저임금제와 최고근로시간제는 근로자들에게 기본인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제도다. 최저임금제는 기본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최저 수준의 임금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므로 그만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위해 퇴출해야 한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제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소상인 및 자영업자 포함)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최저임금제의 개념과 완전히 모순되는 정책이다.
아울러 최고근로시간제, 예컨대 주 52시간 근로제 역시 기본인권의 관점에서 도입된 제도라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게 맞다. 다만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빚어질 수 있는 현장 부작용을 감안하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둘째,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 공무원 정원을 늘리거나 기업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늘리도록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일자리창출’은 ‘취업확대’로 표현을 바꿔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부는 구인자와 구직자에 대한 정보를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수집분석하고 양측의 니즈를 매칭해주는 네트워크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용과 취업 기회를 보강하고, 구인자의 니즈에 부합하도록 구직자의 직업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과 훈련 서비스를 대폭 확대·강화함으로써 구직자의 취업을 늘려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제는 기본인권 보장
셋째,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포용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 고소득자산계층에 대한 누진징세를 대폭 강화해 무소득층 및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조금을 가능한 한 확대하는 소득재분배가 포용정책의 중심이 돼야 하는 것이다. 소득보조금 지급 대상과 금액을 조사책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지난한 일이기 때문에 모든 소득계층에 동일한 소득보조금을 주고 소득 및 자산에 대한 누진징세를 강화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누진세율을 적절히 책정하면 근로의욕과 저축의욕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재분배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소득보조금과 누진세로 분배 강화
그러나 재분배정책을 위해 법인세를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의 소득에 부과하는 법인세는 생산과 분배가 이뤄진 뒤에 과세하는 것이긴 하지만, 사내 유보에 영향을 미치고 기업 투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실상 기업의 생산과 경제 성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 수단이다. 따라서 법인세를 재분배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넷째, 사회복지망을 확충하고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실업보험제도는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 선진국의 실업보험제도를 참고해 실업보험이 실업기간 중 실업자의 생활을 보장해주고 취업 노력을 촉진 및 지원하도록 전면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2016년 말 현재 주택보급률이 102.6%지만 주택보유율은 55.5%에 불과한 상황에서 생겨난 사회적 불안과 불만이 매우 큰 실정이다. 이런 격차는 장기할부주택금융제도의 도입으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5억원짜리 아파트의 10%(5000만원)를 일시금으로 내 주택을 구입하고 주택을 담보로 30년간 연리 6%의 고정금리로 장기할부대출을 받으면 매월 190만원 정도를 지불함으로써 주택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가구에 대해서는 공공임대주택제도를 대폭 강화하고 현실화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격차 불만의 중대한 대상 중 하나가 교육기회의 격차다. 최상위 20% 소득계층 대비 최하위 20% 계층의 교육비 지출 비중은 2003년 20.4%에서 2016년 14.1%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니 만큼 교육기회 격차를 줄이는 특단의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실업보험주거 등 복지망 확충
다섯째, 한국의 취약한 기부문화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격차 불만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기부와 사회적 목적을 위한 기부에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기업들의 기부가 눈에 띌 정도로 증가하고 있고 각종 자선단체에 의한 기부금 모금이 전개되며 뜻있는 개인들의 기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부문화는 아직도 매우 취약한 단계에 있다. 학교 교육과정이나 언론에서의 공론화 등을 통해 기부문화가 더욱 확산되고 정착돼나간다면 포용정책도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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