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참 힘든 나라
세계 각국, 기업 유치에 사활거는데…
한국기업 유치 위해 내건 '파격혜택'
[ 고재연/김재후 기자 ] 2017년 초 삼성전자가 중국에 두 번째 낸드플래시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할 때였다. 이미 1공장이 있는 시안뿐만 아니라 상하이, 충칭 등 중국의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인센티브를 내걸며 ‘러브콜’을 보냈다. 여러 지역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이어가던 삼성전자는 같은해 8월 시안에 두 번째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투자 규모는 1공장과 같은 70억달러(약 7조9000억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밑도는 데다 주변이 온통 밀밭뿐이었던 시안시는 그렇게 ‘삼성 타운’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당시 투자에 관여했던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 공무원들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공무원이 달라졌어요”
2012년 1공장 건설을 준비할 때만 해도 산시성과 시안시 공무원들은 반도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와 해결해야 할 규제 및 법령 등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나서 일일이 법규를 열거해 가며 필요한 부분을 먼저 고쳐달라고 알려줘야 했다. 하지만 5년 뒤 2공장 건설을 논의할 때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 있었다. 현지 공무원들은 모든 법령을 ‘마스터’하고 있었다. 어떤 절차를 통해 규제를 풀고 지원을 해줘야 하는지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 삼성 반도체 공장을 뺏길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아침에 고위 공무원들을 만나 요구 사항을 전달한 뒤 저녁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시장이 보낸 승인 서류가 이메일로 날아왔다”고 떠올렸다. 그는 “다른 나라였다면 최소 1주일은 걸렸을 것”이라며 “반도체산업 육성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중국이 그만큼 필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세계 주요국들은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자리와 세수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기업의 투자라는 판단 때문이다. 공장 부지 무상제공은 기본이고 전력, 용수, 도로 등 인프라를 ‘원스톱’으로 해결해 준다. 삼성전자를 위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현대자동차를 위해 항구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할 정도다. 각종 세제혜택은 물론 투자액의 일정 비율을 현금으로 ‘페이백’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맞춤형 인센티브 제공
최근 전기자동차 시대를 맞아 ‘증설 경쟁’이 한창인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해외 주요 지자체들이 앞다퉈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는 대상이다. 2017년 5월 ‘SK이노베이션, 동유럽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설립 검토’라는 외신기사가 나가자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의 각 지자체가 SK이노베이션 공식 이메일로 각종 인센티브를 약속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6개월에 걸친 검토 끝에 SK이노베이션이 선택한 곳은 헝가리 북부 코마롬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헝가리투자청에는 한국을 담당하는 전담직원이 상주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동유럽에 공장 건설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면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선다”고 설명했다.
이미 공장을 지은 기업에도 세제 혜택을 중단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위원회(EC)는 LG화학 브로츠와프 배터리 공장 건설비의 11%에 해당하는 3600만달러를 현금으로 되돌려주기로 했다. EU는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시장 경쟁 왜곡 우려보다는 지역 경제 발전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LG화학은 유럽 내 2공장 건설을 고려 중이다. 각종 지원 덕분에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2공장을 설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격적인 기업 친화 정책에 힘입어 자동차, 배터리 업체들을 빨아들인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난에서 벗어나 ‘일자리 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도로변 광고판의 상당수는 ‘사람 구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채워질 정도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지난 1월 실업률은 각각 3.6%, 3.7%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에서도 실업률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한다.
숙련공 교육까지 지원
해외 주요국 지자체들은 맞춤형 인력 육성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유치한 미국 조지아주가 대표적이다. 2000명이 넘는 배터리 숙련공이 필요한데, 최저 실업률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주 정부는 해외 투자 기업을 위한 인력지원 프로그램 ‘퀵스타트’를 가동해 인력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 2006년 기아자동차가 조지아주에 투자했을 때도 이 프로그램이 효과를 발휘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퀵스타트 시스템이 워낙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SK의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그냥 얹으면 된다”며 “인센티브는 다른 주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주 공무원들의 기업 친화적 역량과 열정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하림이 2011년 미국 메릴랜드주 닭 가공회사 알렌패밀리푸즈(현 알렌하림푸즈)를 인수했을 때는 주 정부 공무원이 찾아와 먼저 교육비 지원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사업 확장을 위해 450명의 직원을 새로 뽑았는데, 주 정부 공무원이 “신규 직원들은 현장 교육이 필요하다”며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비를 지원했다. 당시 폐수 처리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는 메릴랜드 주지사가 직접 식수를 마시며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은 2015년 6월 말레이시아 테렝가누주에 8만t 규모의 사료용 필수아미노산 공장을 건설한 뒤 잦은 발전기 고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사정을 전해 들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전력 문제는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라며 2500만달러의 발전기 교체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평택 반도체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750억원이라는 ‘값비싼 통행료’를 지급해야 하는 삼성전자의 사례와 극명하게 비교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재연/김재후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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