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미술가 고헤이 나와 서울 개인전
[ 은정진 기자 ] “뭐가 옳고 그른지 알기 어려운 세계가 돼가고 있지 않습니까. ‘베셀’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낙관적으로 살지, 포기하고 살지를 저항적 움직임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일본 출신 미술가 고헤이 나와(44)가 지난 19일 서울 서교동 라이즈호텔에서 열린 개인전 ‘베셀’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 ‘베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라이즈호텔 지하 1층 아라리오갤러리에서 20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7년 만에 열리는 고헤이 나와 한국 개인전이다. 일본 오사카 출신인 고헤이는 조각의 독특한 표면처리와 함께 대상의 본질에 대한 현상학적 질문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업을 전개해왔다. 국내에선 사슴 등 박제 동물에 투명 크리스털과 유리, 우레탄 등을 두른 이른바 ‘픽셀’ 작업으로 알려졌다.
고헤이는 3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품으로 두 점을 꼽았다. 먼저 대형 무대에 설치된 ‘베셀(VESSEL)’ 시리즈(2017)다. 사후 세계를 형상화한 베셀 시리즈는 프랑스 안무가 데미앙 잘레와 협업한 동명의 퍼포먼스를 조각으로 만든 작품이다. 물질에서 표면으로, 표면에서 입체로, 입체에서 공간으로 확장한다는 의미를 담은 베셀 시리즈는 흐느적대는 인체 움직임과 긴장감을 3차원(3D)으로 순간적으로 스캔해 내 조각으로 표현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길이 30m, 너비 4.5m 규모 무대에 반짝이는 베셀 시리즈 인체 조각 작품들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고헤이는 “재료로 사용한 탄화규소가 조명을 받으면서 빛의 윤곽이 드러나는데 어떤 조각인지 알기보다는 빛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찾아보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조각 모두 머리를 감췄다는 점이다. 영혼 없는 신체라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는 “공연에서도 신체가 영혼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퍼포먼스와 무용, 연극, 사운드, 영상을 초월한 매체 간 융합을 작품에 표현해 왔다. 이번 전시에선 일본의 마리히코 하라가 특별 제작한 음악이 작품 주변 공기를 밀도 있게 채워냈다.
고헤이는 작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물인 유리 피라미드 아래에 7개월 동안 전시했던 조각 ‘스론’(Throne·사진)으로 유명해진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도 스론 축소 조각 한 점이 전시된다. 왕좌를 테마로 한 황금 조각 스론은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왕을 위해 만든 피라미드처럼 보이지 않는 힘과 권력을 조각이라는 표현방법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고헤이는 “루브르 피라미드와 이 조각 구조물 모두 권력과 권위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다뤄내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