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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이 시대의 무수한 '정준영 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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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지식사회부 기자 apple@hankyung.com


[ 이현진 기자 ] 5년 전, 기자의 한 지인이 한 말이다. “남자들만 있는 단체카톡방이 있어. 대화 없이 야한 동영상과 사진만 주고받는 훈훈한 방이지.” 당시 웃으며 혀를 차긴 했지만 별 문제의식은 느끼지 못했다. 옛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최근 터진 ‘가수 정준영 몰카’에 분개하는 그의 모습에 묘한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버닝썬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경찰 수사는 버닝썬 클럽 내 폭행사건, 음란물 촬영 및 유포사건, 마약류 투약, 성접대 의혹, 조세포탈 및 경찰과의 유착 등 여섯 갈래에 이른다. ‘(버닝썬 폭력 신고자인) 김상교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한 것은 정준영, 승리 등이 몰카를 공유한 단톡방이 보도되면서다. 유명 연예인들이 여성을 물건 취급하고, 약물을 먹여 저지른 성범죄를 몰래 촬영해 유포했다는 사실에 대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면서 버닝썬 사건은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커졌다.

이번 사건이 돈 많고 잘나가는 연예인들만의 일탈일까. 국내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조모씨(23)는 “지금까지 보도된 학내 단톡방 사건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 왜곡된 성관념, 올바른 성의식의 부재라는 면에서 기존 사건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웹하드에서 ‘한국야동’이라는 이름으로 넘쳐나는 대부분의 영상은 이 시대의 무수한 ‘정준영’이 찍어 유포한 불법촬영물이다. 이를 보고 즐기려는 문화에 대한 각성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

그럼에도 보도가 나간 뒤 ‘정준영 동영상’이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고, 피해자들을 특정하는 정보지가 나돈다. 대중의 관음증을 이용한 각종 미끼 광고도 횡행하고 있다. 경찰청을 출입하는 기자에게는 이런 문의도 왔다. “경찰 출입하니까 정준영 동영상 좀 구해줘.” 이런 행태는 정준영 단톡방에서 오간 대화와 얼마나 다른가. 지금 우리가 숨쉬는 이 사회가 사실상 거대한 단톡방 아닌가. 또래문화니까, 다들 그렇게 즐기니까, 적당히 같이 더러워지는 게 친목이고 의리가 아니다. 이제 이 거대한 단톡방에서 ‘나가기’를 눌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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