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따라 이사하는 움직임 줄어
강남 집값 고공행진에 접근조차 어려워
"신흥학군 시들·전통 명문 학군 부각 가능성 높아" 주장도
'학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유력한 학교 주변에 자리한 아파트를 말할 때 '학교의 세력이 미치는 권역' 정도로 해석된다. 학세권이라도 불리는 기본 조건은 '근거리 배정' 원칙에서 비롯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싶으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고, 해당 학교에 오래 다닐수록 원하는 학교로 진학이 연결된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30~40대의 젊은 부부 사이에서 학세권이라는 용어는 회자되기 시작했다. 비록 집값 때문에 신도시로 밀렸지만(?)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정은 놓을 수 없는 탓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맹자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세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떠올린다고 해 '신맹모(新孟母)'라 불리기도 했다. 학세권은 전통적인 명문학군이나 혁신학교 주변에서 주로 발생했다.
이사하기는 봄, 가을이 좋은 계절이지만 학교 배정을 위해서는 방학이 끼어 있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움직이곤 한다. 자녀들의 학교배정을 위해서다. 이 계절에는 학교 주변의 아파트 매매가보다는 전세·월세 시장이 들썩이곤 했다.
그러나 지난 겨울만큼은 다소 조용한 분위기였다는 게 부동산 업계 안팎에서의 얘기다. 이를 두고 사교육 업계 관계자는 당연한 분위기라는 반응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구가 줄고 전반적으로 자녀에 대한 교육열도 예전만 못하다. 인강(인터넷강의)이라는 대체재도 있고, 학종(학생부종합전형)도 있다보니 예전처럼 한 곳으로 쏠리는 현상도 덜하다. 얼마전 드라마 'SKY캐슬'에 나온 것처럼 학교만 ?는 젊은 부부들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없고, 금수저 집안으로 아버지만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머니가 자녀의 학교 통학이나 교육 등을 신경쓰게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그가 일하는 분당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 일자리가 늘어나 맞벌이 부부도 증가했지만, 자녀의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가 줄고 있다는 얘기였다. 판교에서 한 때 인기를 모았던 혁신초·중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물론 부동산 업계에서의 해석도 있다. 최근 주춤하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집값이 워낙 많이 오른 탓에 이동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셋값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가격대가 높다. 무엇보다 '내 집을 팔고 나가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다.
'나는 부동산으로 아이 학비 번다'의 저자인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 또한 이러한 점에 공감했다. 이 대표는 "강남에 매물들이 나와 있으면 뭐하나. 내 집도 안 팔린 뿐더러 값도 너무 높다. 월급쟁이들이 주로 학교나 사교육을 보고 이사를 가는데, 현재의 조건으로는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예전에는 수도권에 '신흥학군'이라고 불리는 지역들도 왕왕 있었지만, 이제는 대치동이나 목동 등으로 다시 집중되는 분위기라는 점도 주장했다. 그는 "과거에는 대치동이라도 집안 사정이나 부모 직업도 골고루였지만, 이제는 금수저만 있다. 아니 있을 수 밖에 없도록 집값이 너무 높아졌다. 정상적인 월급쟁이 자녀가 대치동에서 학교·학원 다니면서 최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없어졌다. 쉽게 말해 그들만의 세상이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식 안되기를 바라겠는가.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공부' 외에도 다른 길들이 많고 열려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다만 공부를 하고 싶은 자녀에게 '공평한 기회'에 대신 '부동산 가격'부터 설명해야하는 부모의 현실은 씁쓸하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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