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큼 음식도 사랑했던 로시니처럼
좋은 음식·음악과 함께 봄을 즐겼으면
이경재 <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는 말을 재미있어 한다. 세상에는 참으로 먹고 싶은 것이 많다. 아니 많아졌다. 맛이 있는 것은 누구나 좋아할 텐데, 뭔가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갈 때 뭘 먹을지 망설인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겠다.
찬밥을 물에 말아서 후루룩 먹으면 한 끼 식사로 그만인 때가 있었고, 짜장면은 입학식이나 생일날에야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던 때가 있었다. 예전에는 “식사는 하셨습니까”라고 안부를 묻는 경우가 많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삶의 풍요를 누리게 되면서 형성된 트렌드 중 하나가 소위 ‘먹방(먹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 신드롬’이다. 언제 어디서든 TV를 틀면 나오는 다양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부터 신기한 먹거리, 이국적인 해외의 음식까지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렇게 전국 어디를 가나 ‘방송 맛집’을 만날 수 있으니 이젠 별미의 개념조차 흐릿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때문에 음식점들은 방송을 통해 맛집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방송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맛집을 찾아 나선다. 음식으로 스타가 생겨나기도 하고 스타가 음식을 유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19세기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의 음식 사랑은 다른 음악가보다 유별났다. “먹는 일보다 더 훌륭한 일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주장하기를, 자신은 인생에 세 번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그가 작곡한 첫 오페라가 낭패를 봤을 때고, 두 번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유명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을 때, 마지막 세 번째는 선상 소풍을 나갔을 때 점심으로 준비한 송로버섯으로 속을 채운 칠면조 요리가 배 밖으로 떨어져 버렸을 때라고 했다.
로시니는 40세가 되던 해 오페라 작곡을 그만둔다. 40편에 가까운 오페라 작품과 노래, 종교음악과 기악곡을 작곡하며 자신의 명성과 가치를 높여가던 젊은 음악가가 돌연 일을 그만둔 것이다. 그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살집이 불은 자신의 건강 문제거나, 이미 명성을 쌓아 축적한 경제적 넉넉함 덕에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혹자는 그 이유로 그의 음식 사랑을 꼽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시니는 파리 외곽에 살면서 스스로 요리하는 것을 즐겼다. 로시니가 만든 소고기 요리는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붙인 요리법과 함께 식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먹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소화시키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4막의 즐거운 오페라고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보”라고 했던 로시니는 다른 작곡가들과 다르게 말년까지 치열한 음악인생을 사는 대신 먹는다는 것의 가치를 사랑했던 인물이다.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먹거리 정보는 삶을 살찌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먹는다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올봄에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살을 찌워보는 것도 좋겠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글, 음악, 자연, 사람들과 함께 마음이 풍성해지는 계절이 됐으면 한다. 로시니의 작품 ‘세비야의 이발사’를 들으며 식사해보는 것은 어떨까. ‘로시니 할아버지’가 즐거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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