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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봄 같지 않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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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어제 서울 낮 기온은 15도까지 치솟았다. 기상청은 하루 평균기온이 영상 5도 이상을 9일간 지속하고 다시 떨어지지 않으면 그 첫날을 봄의 출발로 본다. 올해 봄은 이미 지난달 23일(평균 6.7도) 시작됐다. 지난해(3월 6일)보다 열하루나 빠르다.

이런 숫자가 아니어도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에서 봄을 체감한다. 겨울 코트·패딩 대신 서둘러 봄옷을 꺼내 입는다. 거리에는 벌써 반팔 티셔츠 차림도 눈에 띈다. 11일 제주를 시작으로 개나리(서울은 24일) 개화 소식도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처럼 봄은 소리와 함께 온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정겨운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왁자지껄 뛰노는 아이들 소리, 새 학년을 맞은 학생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생산·건설 현장의 활기찬 기계 소리….

하지만 봄은 왔는데 봄을 만끽하기 힘든 나날이다. 연휴 내내 서울 수도권은 물론 전국 대부분 지역 하늘이 온통 뿌옇게 바랬다. 숨쉬기조차 꺼려지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탓이다. 연일 휴대폰에 울려대는 미세먼지 경보는 모처럼 나들이의 설렘마저 빼앗아갔다. 서울이 어느덧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멕시코시티와 비교되고, 황사마스크가 올봄 패션상품으로 뜰 것이란 ‘웃픈’ 전망까지 나온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읊은 심정이 그랬을까. 봄이 왔어도 봄이 아닌 느낌은 나쁜 대기질 탓만이 아니다. 갈수록 팍팍한 경제·민생 현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뀐 한반도 평화에 대한 우려까지 우리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한다.

봄의 환희를 가로막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 역동성을 잠식하는 과거회귀 담론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억압적 법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치닫는 이익집단 간 반목과 갈등 분출…. 게다가 오늘부터 새로 유아들을 맞아야 할 유치원 수백 곳이 개원을 미루고, 취업전쟁에 지친 청년들은 졸업을 미루고, 파탄난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하는 정부는 민생회복 체감시기를 마냥 미루고 있다. 17년 끌어온 투자개방형 병원은 기약없이 개원이 미뤄지고, 노동계는 때 이른 ‘3월 춘투(春鬪)’까지 예고해 놨다.

아무리 답답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비전과 꿈이 있다면 당장의 어려움은 견딜 수 있다. 국민에게 그런 희망을 주는 게 국정을 위임받은 정부와 국회의 몫이다. 하지만 문제를 풀기는커녕 그들이 ‘문제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다.

올봄엔 미세먼지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황사도 심상치 않을 것이란 예보다. 5월께 남동풍이 불어야 해소될 전망이다. 희뿌연 하늘이 푸른빛을 되찾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우리 마음속 봄은 언제나 올까.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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