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여행 (5) 천국과 가장 가까운 볼리비아 우유니
자연이 빚어낸 데칼코마니…초현실을 경험하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은 대체불가능한 여행지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여행지지만 쉽게 가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낭만과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자연이 주는 신비에 경탄하고 겸허해지는 곳. 천국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 곳. 모든 형용사와 인간의 말을 빼앗아 버리는 곳. 그곳이 바로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그 남자: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우유니의 낮
우기가 끝나는 시점에 물이 찬 우유니 만날 수 있어
사는 게 바빠 숨조차 쉬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던 젊은 날, 책상 끄트머리엔 천국의 풍경을 찍은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당신의 상상 속 천국은 어떤 모습인가? 눈 부신 햇살? 새하얀 뭉게구름? 천사들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행복한 미소? 하얀 구름 빛과 옅은 하늘빛만으로 이뤄진 신비로운 사진 속 공간엔 기분 좋은 햇살이 쉴 새 없이 반짝인다. 공간 속에 자연스레 묻힌 사람들의 입가엔 해맑은 미소가 한가득이다. 사진 한쪽 삼삼오오 둘러앉은 이들의 몸짓에서는 낭만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누군가는 온몸을 감싸안는 구름 의자에 몸을 뉘인 채 멍하니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천국의 탈 것 위에서 희망의 꿈을 꾸고 있다. 현실에는 도저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 풍경에 매료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그렇게 매번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볼 때마다 남자는 꿈을 키웠다.
볼리비아의 포토시 주에 있는 우유니 소금 사막은 안데스산맥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바다의 소금과 주변 산지에서 흘러내린 염류가 합쳐져 생성된 분지 지형이다. 면적은 약 1만2000㎢ 정도로 경상남도보다 약간 넓은 규모. 소금 매장량은 약 100억t 이상으로 추정한다.
중남미 여행을 위해 한국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책상 끄트머리에 놓여있던 사진을 보며 꿈을 키운 지 10여 년 만에 남자는 우유니 소금 사막으로 향했다. 혹여 ‘물 찬’ 우유니를 보지 못하게 될까 초조한 마음에 발걸음을 급히 재촉했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데, 11월에서 3월까지가 우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라 해서 항상 물 찬 우유니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확률이 높다는 뜻일 뿐. 때는 3월 초, 우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기에 정말 운이 좋아야 물 찬 우유니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라파즈에서 버스를 탄 지 12시간 만에 우유니 마을에 도착했다. 대체불가한 세계 최고의 여행지라는 별칭에 어울리지 않게 가난하고 쥐뿔도 없어 보이는 우유니 마을. 그곳에서 가장 시끄럽고 북적대는 곳은 중앙 거리에 모여 운영되는 여행사 앞이다.
우유니 소금 사막은 현지 여행사를 통하지 않으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여행사를 통할 것을 권한다. 물이 차오른 울퉁불퉁한 소금 결정체 위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커다란 바퀴의 지프를 타야 하기도 했고, 지표 하나 없는 새하얀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이유도 있다.
노을지는 우유니, 인생 최고의 경험
‘하늘과 소금’ ‘비 온 후 갬’ ‘바람이 없어야 함’이 바로 천국을 만드는 조건이다. 최근에 내린 비가 발목 언저리에 찰랑거릴 정도로 차 있어야 하고, 그 물에 비친 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한다. 별것 아닌 이 몇 가지 조합이 딱 맞아떨어지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천국이 드러난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인 곳. 지평선 위에 떠 있는 모든 것을 데칼코마니처럼 그려내는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빛과 소금이 만들어내는 신의 마술이자 예술.
우유니의 시공간은 우리가 알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지평선, 아니 수평선인가. 원근감이 없어 동서남북 갈피를 잡을 수 없고, 흐르는 시간은 가늠조차 어렵다. 지표 하나 없이 길을 찾아 나서는 원주민 가이드가 신기할 따름이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도 우유니 여행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처럼 ‘초현실’ ‘비현실’이 바로 우유니를 대변하는 단어라 할 수 있겠다.
이 미친 대자연 속에서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으랴? 남자 역시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어느 방향으로 찍어도 멋진 작품이 나오긴 하지만 우유니 ‘그 자체’는 아니다. 천상의 우유니를 한 장의 완벽한 사진으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 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고개를 드니 찬란한 태양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 하늘에서 떨어지는 해와 땅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 지평선에서 눈앞에서 하나가 된다.
그렇게 하늘과 땅으로부터 합쳐진 태양이 일생에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노을을 만들어낸다. 하늘과 땅, 그러니까 세상 위 모든 만물이 붉게 물든다. 대자연이다. 가로등이나 건물 내에서 새어 나오는 인공 광원이 일절 없는 곳이다. 노을이 지는 곳만 빛이 남는다. 그 외의 세상은 어둠으로 잠긴다. 마치 거대한 거인의 입속에서 서서히 거인의 입이 닫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거인의 입이 닫히고 어둠이 내리면 칠흑 위로 별이 떠 오른다. 또한 바닥에도 별이 뜬다. 바닥에 뜬 별을 살포시 밟노라니, 별들이 출렁이며 이리저리 요동친다. 별을 즈려밟고 걸을 수 있다는 것. 오직 우유니 소금 사막이기에 가능한 인생 최고의 경험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구 같지 않은 곳,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천국을 꿈꾼다면, 인생 최고의 풍경, 인생 최고의 경험을 원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 한다. 우유니 소금 사막의 지하에는 값비싼 광물인 리튬이 매장돼 있는데, 그 양이 세계 총매장량의 절반에 해당할 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리튬 개발권을 얻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볼리비아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는 중이다. 아니, 이미 판매권이 지구상 어느 나라로 넘어갔다는 소문도 있다. 조만간 천혜의 자연, 우유니 소금 사막은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잠시 후, 어둠이 집어삼킨 세상 넘어 어슴푸레 떠오르는 두 개의 달로 인해 두 번째 천국이 나타난다.
그 여자: 은하수가 흐르는 우유니의 밤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의 축제
우유니 소금 사막에 대한 여자의 첫 느낌은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음, 언빌리버블했다. 해가 진 후에도 진한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온 일행은 쉬이 가시지 않는 흥분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덧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고, 그즈음 지난밤 일행을 숙소로 데려다주었던 가이드가 다시 돌아왔다. 더 놀라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출발해야 한다 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있다고? 새벽 3시에?
그는 어둠 속에서 지프를 몰기 시작했다.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방향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는 소금 사막에서 물 찬 우유니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던 한낮의 재주도 신기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정확한 방향을 잡고 차를 모는 건 더욱 신기했다. 어떻게 길을 찾느냐는 물음에 낮에는 아주 멀리 보이는 (여자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산을 지표로 삼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따라간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방법. 별을 따라간다니!
사실 여행 중 밤하늘을 별을 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안전을 위해 해가 지기 전 숙소로 돌아와야 하고, 숙소 또한 대부분 시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태어나서 어제까지 본 별을 합친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떠 있는 별이 더 많은 것 같다. 낮에 뜬 두 개의 태양이 지고 나니 우유니의 밤은 차가웠다. 콧날을 스치는 찬 바람만이 꿈속의 별들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새벽은 낮의 우유니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넘쳤다. 낮에 본 우유니가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경이로움이라면, 밤의 우유니는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아름다움. 물 맑은 소금 호수 위로 쏟아지는 은하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다. 누가 머리 위에서 쏟아져 발아래 반짝이는 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누가 까만 눈동자 속을 흘러가는 은하수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제야 칠흑처럼 어둡던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둡지 않았다. 어둡다고 생각한 건 그저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비로소 영화 속에서 가능할 것 같던, 별을 따라가는 여행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다.
어느덧 여자의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겼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웬만한 일에는 무심하고 무뎌졌으며 살면서 부딪쳤던 크고 작은 시련에 다쳐볼 만큼 다치고, 구를 만큼 굴러 세상과 ‘맞짱’ 정도는 뜰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동그라미가 된 줄 알았다. 어른이 된 줄 알았다. 어느날, 덜컥 만난 거대한 자연 앞에서 그저 아직 작은 점 하나도 되지 않았음을 알기 전까지.
그 남자(오재철), 그 여자(정민아) : 결혼과 동시에 414일간 신혼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인 그 남자와 웹 기획자 출신인 그 여자는 부부이기에 앞서 한 개인으로서 한 지역에서 경험하게 되는 두 가지 여행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공동 저서로 《함께, 다시, 유럽》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등이 있다.
볼리비아=글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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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볼리비아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주로 캐나다나 미국 항공사를 이용해 페루의 리마나 칠레의 산티아고를 거쳐 라파스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는 버스로 10시간 이상, 항공으로 50분 걸린다. 볼리비아는 해발고도 3680m로 고지대에 속하므로 고산병에 주의해야 한다. 고산병의 증상은 두통, 오심, 구토, 불면증과 보편적으로 호흡 곤란이 함께 있다. 이런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루 2L 이상의 수분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볼리비아 여행을 위해서는 사전에 비자를 받아야 한다. 볼리비아만 방문한다면 국내 영사관에서도 발급이 가능하지만 다른 나라를 거쳐 들어갈 경우 해당국의 볼리비아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언어는 스페인어를 쓰며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3시간 느리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 투어는 보통 네 가지로 나뉜다. ‘데이 투어’와 ‘선셋과 스타라이트 투어’, ‘스타라이트와 선라이즈 투어’ 그리고 2박3일 ‘사막 횡단 투어’다. 어렵게 찾아간 지구 반대편이니 만큼 네 가지 투어를 모두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먼저 데이 투어는 우유니의 낮과 노을을 보고 마을로 돌아오는 투어이고, 선센과 스타라이트 투어는 낮과 노을 그리고 별까지 보고 늦은 밤에 돌아온다. 스타라이트와 선라이즈 투어는 별과 일출을 본다. 마지막으로 2박3일간의 사막 횡단 투어는 말 그대로 2박3일간 볼리비아의 오프로드를 달리는 것(볼리비아의 우유니에서 칠레의 아타카마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투어)다. 2박3일 투어를 제외한 나머지 투어의 경우 투어 한 개당 1인 2만~4만원 내외의 비용이 든다.(인원수에 따라 가격이 조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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