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특유의 식감 100% 느끼려면 간장소스 '찍먹' 하세요
'글쓰는 셰프' 박찬일의 세계 음식 이야기 - 일본 미나미시마바라 '소면'
한·일 양국의 음식 문화는 많이 닮아 있다. 그중에서도 면을 좋아한다는 점이 도드라진다. 소면도 그렇다. 잔치국수나 비빔국수에 쓰이는 소면은 일본에서도 많이 생산된다. 분식집 등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 소면은 가게에서 파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대개 마트에서 사서 집에서 요리한다. 한국의 소면이 별다른 브랜드 차이가 없는 반면, 일본은 어디 소면이냐고 꼼꼼하게 따진다. 규슈 나가사키현에 속한 조용한 지역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시는 그 소면의 왕국이다. 그것도 손으로 쳐서 늘이는 데노베 소면(手延べそうめん)의 본고장이다. 몇 년 전에 한국에 본격 소개되기 시작해서 이제 소면 마니아들은 이 지역산 소면을 찾는 경우가 많다.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작년, 미나미시마바라 소면을 가지고 운영하는 식당에서 ‘팝업’ 행사를 연 적이 있다. 탄력 있고 비단처럼 혀에 감기는 면발에 많은 미식가들이 깜짝 놀랐다. 다시 행사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빗발쳐서 한 번 더 열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냥 평범해 보이는 국숫발인데 미나미시마바라 소면은 맛이 다를까. 손으로 친다는 면은 과연 어떤 것일까. 현장으로 갔다.
300곳이 넘는 소면 공장이 있는 미나미시마바라
미나미시마바라시는 나가사키현에서도 남쪽의 시마바라반도, 그곳에서도 제일 남쪽(南=미나미)에 있다. 구마모토시와 아마쿠사 섬도 가깝다. 아리아케 해를 바라보고 있는 조용한 관광, 농촌 지역이다. 서울에서 가자면 상당히 복잡한 루트를 거쳐야 한다. 후쿠오카나 나가사키, 구마모토에서 배나 육로를 이용해 들어간다. 좀 멀다. 대신 보답이 있다. 그만큼 자연이 깨끗하고 조용한 휴식을 보장한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다. 자연 환경도 기가 막힌다. 제주 올레가 일본에 ‘수출’된 것은 많은 이들이 안다. 미나미시마바라에도 일본에 수출된 올레 코스가 있다. 다른 지자체와 치열한 경쟁을 치러서 발탁됐다. 아름다운 풍광과 인심, 해당 지역 공무원들의 헌신이 한국 제주올레 측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후문이 돌았다. 과연 이곳의 올레 코스는 절경을 자랑한다.
우선 국수 취재에 들어갔다. 미나미시마바라시에만 300곳이 넘는 소면 공장이 있다. 오래된 공장은 4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개 가족 경영의 소규모다. 품질은 거의 같다고 봐도 된다. 생산자 조합의 한 공장에 들렀다. 직원들이 위생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열심히 면을 뽑고 있다. 데노베, 즉 수연(手延)이란 문자 그대로 손으로 늘였다는 뜻이다. 손 수 자에 늘일 연이다. 수타면이나 라면이란 말과도 비슷하다. 수타는 손으로 쳤다는 뜻이고, 라면은 손으로 늘인다는 뜻. 결국 다 비슷한 계통의 면이다. 과거와 달리 100% 수작업은 아니지만, 중요한 공정은 아직도 사람이 일일이 개입해서 손으로 작업한다. 1970년대 들어 기술자가 부족해지자 점차 기계를 주요 공정에 투입했다. 기계로 해도 품질의 차이가 적은 부분에만 기계화하는 식이다. 공정을 쭉 보니, 그 기계화라는 것도 이미 옛날식의 소박한 전통이 됐다. 거대한 설비가 들어가는 공장 면과 차원이 다른 품질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다.
기계로 거의 전 과정을 만들면 반죽, 가공, 건조까지 몇 시간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미나미시마바라 면은 3일 이상이 소요된다. 사람이 손으로 하는 과정, 기다리고 기다리면서(늘이기 과정, 숙성과 건조 과정 등) 최대한 시간을 쓴다. 품질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면이 탄력있게 완성되도록 타이밍 잡는 게 노하우
원래 이런 소면은 중국에서 왔다고 한다. 시마바라 소면 진흥회 시라이시 다모쓰 회장의 설명이다.
“중국 푸저우(福州) 지역에서 왔을 겁니다. 이 소면은 단순해 보이지만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어요. 우선 물이 중요합니다. 물이 나쁘면 면을 만들 때 끊어집니다. 기계로 만든 소면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물리적인 문제입니다. 면을 일일이 꽈배기처럼 꼬는 과정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기계 소면으로는 할 수 없어요. 미나미시마바라 소면의 고유한 식감과 탄력은 기계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이 조합에서는 장마철인 6, 7월에는 생산을 중단한다. 습도가 너무 높아 고품질의 면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쉰다.
“일본인에게 국수는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지진 등 재난이 있기 때문에 비상식량으로 예로부터 구비했어요. 휴대용 버너로 끓이기만 하면 훌륭한 음식이 되니까요.”
국수는 원래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의 비상식량이었다. 말려서 휴대하므로 상하지 않고, 물만 있으면 열량이 충분한 맛있는 음식이 됐다. 아마도 중근동에서 발명됐을 국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유다. 우리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도 그런 단계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데노베 소면은 반죽부터 시작된다. 밀가루, 소금, 물이 전부다. 글루텐을 짱짱하게 활성화시켜 꼬고 늘이면서 점차 국수가 만들어진다. 몇 번을 꼬고 늘이기를 반복하다가 기계에 걸어서 자동으로 상하운동을 시킨다. 이때 면의 탄력이 더 높아지고 특유의 식감이 생긴다. 마치 손으로 잡아 늘이는 것 같은 동작이다. 중간에 적절한 휴식을 주면서 면이 더 탄력 있게 완성될 수 있도록 타이밍을 잡는 것도 노하우다. 그다지 많은 생산량이 아닌데도 투입된 인원이 만만치 않다. 면 가격이 높은 까닭이다. 기술자가 점차 줄어들어 외부에서 수혈받는 실정이다.
쓰유에 찍어 먹으면 개운한 맛 일품
이 지역산 소면은 맛있게 먹는 법이 있다. 첫째는 ‘찍먹’이다. 마치 메밀국수를 먹듯이 면을 삶아서 차갑게 헹군 뒤 준비된 간장소스(쓰유)에 찍어먹는 것이다. 한국식 메밀국수는 염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간장소스에 면이 잠기도록 해서 먹지만, 일본식은 적셔질 정도로 찍기만 해서 먹는다. 소스 염도가 그래서 더 높다. 고추냉이 등을 추가해서 먹으면 더 맛있다. 이 ‘찍먹’이 소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탄력이 최대한 유지되기 때문이다. 입에서 마치 면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논다. 아주 가늘게 만드는데, 혀를 희롱한다. 이 지역의 1인분 정량은 보통 100g. 한국인인 나는 150g은 먹어야 먹은 듯했다.
다음으로는 국물 국수다. 이 지역의 특산 소스(쓰유)는 ‘아고’라고 부르는 날치가 들어간다. 기름기가 적은 날씬한 날치를 골라 말린 뒤 간장 등을 섞어 소스를 만든다. 이 소스를 뜨거운 물에 섞어서 육수(국물)를 만든다. 멸치를 쓰는 잔치국수를 연상하면 비슷하다. 호록호록, 면이 빨려 들어오고 국물을 들이켜면 개운하다.
어묵이나 튀김 등의 고명을 얹을 수도 있다. 필자가 한국에서 이 면을 가지고 행사를 했을 때는 돼지고기 육수를 썼다. 고명으로는 삶은 고기가 올라갔다. 아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최고는 ‘찍먹’이다. 면의 탄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국수를 먹고는 올레길을 가볍게 걸어봤다. 미나미시마바라는 현재는 작은 시에 불과하지만, 과거에는 번성한 남만무역항이었다. 유럽의 배가 드나들었다. 1567년에 이 지역의 구치노쓰항에 첫 배가 들어왔다. 이 항구가 올레길의 시작점이다. 바다를 옆으로 끼고 걷는 길은 환상적이다. 푸른 바다가 물결치고, 겨울에도 비교적 따스한 바람이 분다. 신사를 지나서 물의 개구쟁이 요정인 ‘갓파’상을 지난다. 마을의 양상추 밭이 너르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는 바다가 넘실댄다. 푸르고 푸른 물감으로 휙, 풍경화를 만들어낸 건 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총길이가 10.5㎞이며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난이도는 중. 시 상공관광과에서 관리한다.
농민군이 전투 치른 시마바라의 난 유명
미나미시마바라시에 오는 한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있다. 소면, 올레길, 돌고래 체험 외에 하라 성터(原城跡)를 방문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가톨릭 순례자들도 많다. 신자가 아니어도 꼭 들러볼 가치가 있다. 성터라는 말은 곧 현재는 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유가 있다. 이곳을 무대로 4만 명에 이르는 농민군이 막부군에 대항해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1637년에 봉기한 실제 사건이다. 4개월을 하라성에서 농성하며 버텼으나 결국 패했고, 막부군은 반란군 전원을 척살했다. 성도 완전히 파괴했고, 시코쿠 등의 타 지역에서 새로운 주민을 이주시켰다. 완벽하게 반란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그 싸움이 전해졌고, 바로 유명한 ‘시마바라의 난’이 됐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던 농민군의 처절했던 싸움은 지금도 가슴 아픈 역사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당시 반란군의 수장이었던 소년 장군 아마쿠사 시로는 전설이었다. 당시 17세의 소년 장수였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싸움은 하나의 거대한 히스토리가 돼서 아직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 지역의 가톨릭 역사를 잘 살펴볼 수 있는 아리마 기리시탄 유산 기념관(有馬キリシタン遺産記念館)이 있어서 들러보면 좋다.
뉴스